북한에 핵 기술이 흘러 들어간 과정

9월 6일 뉴욕 타임스는 북한에 핵 기술이 흘러들어가 과정을 파헤쳤다.

기사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서 핵 보유 인접국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중국이다.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현재는 북한도 핵을 보유했다. 특이하게도 이런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은 다름 아닌 중국 자신이다.

1974년 인도에서 제1차 핵실험이 있었다. 인도와 적대적이던 파키스탄은 서둘러 중국에 핵무기 연구 제조를 도와달라고 청했다. 1976년 중병을 앓고 있던 마오쩌둥은 파키스탄을 도와주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얼마 안가 사망했다.

파키스탄의 핵물리학자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ahn)에 따르면, 파키스탄 관원이 마오쩌둥 장례에 참가하자 중•파 양측은 핵기술 전수의 세부 사항을 결정했다. 파키스탄의 우라늄 농축 계획의 책임은 A. Q. 칸이 맡았다.

미국의 핵 개발 관련서적 ‘핵 익스프레스(The Nuclear Express)’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중국은 1982년 파키스탄에 핵무기를 바로 만들 수 있는 무기급 농축 우라늄 50kg을 보냈다. 1990년에는 파키스탄 연구진을 중국에 초대해 중국 핵시설에서 실험을 하게 했다. 1998년 파키스탄은 자신의 힘으로 공개 핵실험을 진행한다.

비슷한 시기에 파키스탄은 북한에게 우라늄 농축 기술, 원심 분리기와 관련 장비, 부품, 설계도 그리고 핵연료요소를 제공하고 북한의 미사일 기술과 설계도, 지원을 제공 받았다. 북한에 핵 기술이 본격적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마오쩌둥은 자기 아들을 포함한 40만 명의 중국군을 아낌없이 희생해 가면서 북한 정권을 보존해 주었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행위를 정치적으로 “총명하다”고 여겼지만 그 결과는 지금 핵으로 중국을 위협하는 ‘괴수 한 마리’를 키운 셈이 됐다.

북한, 중국, 소련의 관계는 늘 조금 특수했다. 중국과 북한은 처음부터 경쟁하는 관계였다. 마오쩌둥도 김일성도 자기 정권을 스스로 세운 공산주의 지도자였다. 한편으로는 마오쩌둥과 스탈린이 경쟁적으로 스스로를 한반도 공산정권의 주인이라고 여겼다.

김일성은 중국의 큰 지원을 받았지만, 결코 중국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5년, 김일성은 북한 노동당 내 친소련 원로들을 숙청했고, 이듬해인 1956년 북한 인민군 내의 친중국 장령들 일부를 체포했다. 일부 장령들은 중국으로 피신했다. 이당시 중국군은 여전히 북한에서 완전히 철수하지 않은 상태였다.

영국 카디프 대학 국제관계학 교수 세르게이 라드첸코는, 새로이 해독된 러시아 비밀문건을 인용하여, 당시 김일성의 친외 세력 숙청 때문에, 소련은 마오쩌둥에게 중소가 함께 김일성을 치자고 제안했으나 마오는 동의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마오는 다시 한 번 북한 김씨 정권을 보호해 준 것이다.

결국 마오쩌둥은 북한 김씨 정권을 보존해 주었고, 간접적으로 핵무기를 얻게 함으로써, 자기 후임자들에게 끝없는 우환을 남겨주고 말았다.

NTD 뉴스 리밍, 자오윈

기사 원문 : http://www.ntdtv.com/xtr/gb/2017/09/07/a1341323.html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