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의 죽음.. 의사의 신념으로 만든 베지밀이 살리다

한국 최초 두유 ‘베지밀’을 만든 정식품 창업주 명예회장이 향년 100세로 지난 9일 저녁 별세했습니다.

1917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정 회장은 두 살 때 부친을 여의고 어린시절 밀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배고픈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어렵게 생활하며 정 회장의 교육 뒷바라지를 했으나 정 회장은 황해도 도립 사범학교 시험에서 낙방하고 15 살 때 친척 소개로 평양 기성 의학강습소 사환으로 취직하게 됩니다.

의학강습소에서의 사환의 일은 수천 장의 교재를 동사하는 일이었습니다. 매일 반복하다보니 어느 순간 의학 교재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일을 하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정 회장은 사환 일을 시작한지 4년 만인 1936년 19살의 나이로 의사 검정고시에 최연소 합격했습니다.

정 회장이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서 견습 의사 과정을 밟던 시절 ‘소화불량’이라고 적혀있는 배만 볼록하게 튀어나온 갓난아기 환자를 만나게 됩니다. 의사들 중 누구도 신생아들이 복부팽만에 장기간 설사를 계속하다 숨지는 원인 모를 ‘소화불량’에 손을 쓰지 못했습니다. 결국 갓난아기는 사망했고 정 회장은 의사로서 무력감과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정 회장은 이 숙제를 풀기 위해 196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196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 메디칼센터에서 ‘유당불내증’이라는 병명이 수록된 최신 논문을 발견하게 됩니다.
정 회장은 갓난아기의 소화불량이 유당 분해효소인 락타아제 결핍으로 모유나 우유에 포함된 유당을 정상적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대장에서 유독물질을 생성하는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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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유학시절 정 회장의 모습, 정식품 제공>

1965년 귀국한 정회장은 정 소아과 의원 지하실에 맷돌과 가마솥을 들여놓고 간호사 출신의 아내 고 김금엽씨와 함께 필수 영양소가 풍부하면서 유당 성분이 없는 두유 ‘베지밀’을 만들게 됩니다.

이전까지 아무도 손을 쓰지 못하고 죽음을 지켜보야했던 유당불내증 신생아들을 정 소아과에서 살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다른 소아과도 두유를 얻기 위해 정 소아과를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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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1955년 정 소아과 앞에선 정 회장, 정식품제공 >

정 회장은 1973년 정식품을 설립하고 56살에 의사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합니다.
정 회장은 1984년 ‘혜춘장학회’를 설립해 그 후 33년 동안 2350명에게 21억원의 장학금을 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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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정 회장과 정 소아과 직원들, 정식품제공>

갓난아기에게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정 회장의 의사로서의 신념이 두유를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많은 신생아들을 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NTD 이연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