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중국의 그림자를 벗어 던진 베트남, 중국식 호적제도 폐지 선포

베트남 정부가 며칠 전 40년된 호적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외부 세계는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회의를 앞두고 이렇게 큰 변화가 발생하자 일제히 관심을 보였습니다.

BBC 중국어 사이트는 베트남의 호적제도가 중국의 호적제도를 모델로 만들어졌고, 베트남이 사회주의 공화국이 된 1975년에 전국적으로 실시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제도하에서 개인은 고정된 주소 한 곳을 등록해야 하고, 이 주소를 중심으로 개인의 교육, 의료, 사회보험, 위생, 주택 구입, 취업 등등이 모두 연계됩니다.

보도에 따르면 처음 호적제도가 도입됐을 때는 시골 인구의 도시 유입을 억제하려는 목적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호적제도를 핑계로 반정부 인사를 통제했습니다.

2017년 APEC 정상회의를 앞둔 11월 6일, 베트남 정부는 40년된 이 제도를 폐지하고, 숫자로 된 신분증 번호로 인구를 관리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화포(華頗), 베이징 시정관찰가]

“앞서 개혁파로 유명한 베트남의 전 총리 응우옌 떤 중(Nguyen Tan Dung)이 정치국에서 축출됐는데요, 당시 세계는 베트남의 개혁이 조용히 멈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베트남이 회의를 앞두고 이 소식을 선포한 건 세계를 향해 베트남의 개혁이 중단될 수 없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6년 1월 26일 베트남 공산당은 기존의 총리인 응우옌 떤 중을 중앙집행위원 후보자 명단에서 배제한다는 결정을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베트남 경제개혁을 주도해 온 친기업 성향의 총리가 낙마했고, 이에 따라 베트남의 개혁 속도가 늦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었습니다.

베트남의 호적제도 폐지를 계기로 국제사회에서는 다시금 공산 중국의 호적제도의 폐단에 대한 평론이 돌았습니다.

중국은 1958년에 정식으로 호적제도를 도입했고, 이 제도의 억압 속에 1960, 1970년대 중국에서는 유동 인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화포]

“애초에 공산 중국은 사회를 아주 잘 통제하려 했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농업 인구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업 국가였기에 농민들이 쉽게 농촌을 떠나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호구 이원제를 실시하여 도시인에게는 식량 배급표를 지급했고, 농촌 사람은 식량을 스스로 생산해서 판매하게 했습니다. 이때문에 농민은 도시에 가면 배급표가 없어서 먹을 것을 쉽게 구할 수 없었고 살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1978년 12월에 제안된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많은 농민이 도시로 진출해 노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도시로 간 농민과 자녀들의 신분, 권익, 보장은 모두 기존의 호적제도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화포]

“많은 농민이 도시 공장으로 와서 노동자가 됐지만, 그들은 도시인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들은 별도로 농민공이라 불렸습니다. 그들에게는 도시민 호적이 없고, 의료지원도 없으며, 안정된 수입도 없었습니다. 당과 현지 정부는 농민들에게 생계 지원 지출을 할 의사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농민공의 값싼 노동력만 이용할 생각뿐이었습니다. 호적제도를 변화시켜서 농민공에게 도시인 자격을 조금이라도 부여한다면, 그만큼 지출이 늘기에 이를 부담스럽게 생각한 것입니다.”

비록 2014년부터 중공이 호적제도 일부를 수정해 농약(農藥) 호적과 비 농약 호적의 구별을 없앴지만, 농민이 도시에 취업할 때는 여전히 임시거주증을 신청해야 합니다.

[화포]

“중국 호적제도가 느슨하긴 하지만,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같은 대형 도시는 아직도 다른 성(省)의 사람이나 농민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도시에 그렇게 많은 인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인데, 그래서 중국 경제 발전에 불균형을 가져옵니다. 호적제도가 있고 공권력이 있으니 이들 농민을 함부로 쫓아냅니다.”

[장젠(張健), 재미 중국문제 연구가]

“(농민공은) 이렇게 좋은 도시의 학군을 누릴 수 없고, 이런 일선 도시에서 집을 살 수도 없습니다.”

베트남에서도 그동안 중국과 마찬가지로 호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도시로 나가 발전을 도모한 시골 사람들은, 호적제도 때문에 본의 아니게 도시의 2등 시민으로 전락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의 개혁은 중공을 앞섰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2013년, 수도 하노이에 3년만 거주하면 직업 증명을 얻고 주택을 구입하거나, 도시 호적을 가진 친척과 함께 살 수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곧 영구 거주 신분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보도에 따르면 베트남은 1986년에 개혁개방을 실시했고, 수많은 측면, 특히 정치영역에서 중국을 넘어섰습니다. 2006년, 베트남은 제1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총서기 경쟁선거를 실현시켰습니다. 같은 해 베트남은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했고, 국회의원 직선을 실현시켰습니다.

2007년부터 베트남은 점진적으로 야당활동 금지와 신문발행 금지를 해제했습니다. 또한 부패추방 대책으로 2010년, 공무원 재산 신고제도를 도입해 부과장급 이상 간부는 모두 개인재산을 공개해야 합니다.

베이징 시정관찰가 화포는 비록 공산당이 베트남을 통치하고 있지만, 베트남에는 과거 오랜 프랑스 통치 당시의 인권과 민주의 가치에 대한 이념이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취재 주즈산

기사 원문 : http://www.ntdtv.com/xtr/b5/2017/11/08/a13499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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