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인민복’,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By 이 충민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 인민복을 입고 간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이 이러한 복장을 한 의도는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보통 중국이나 북한 등 아시아 공산국가에서만 인민복을 입기에 자유국가에서는 그리 이미지가 좋지 않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인민복은 공산당 지도자가 개발한 것은 아니다.

인민복의 정식 명칭은 ‘중산복’으로 알려져 있다. 1923년 세상에 나온 중산복의 창시자는 바로 중국 민주혁명가 쑨원(孫文)이다. 그의 별명이 ‘중산(中山)’이었기에 중산복으로 불리는 것이다.

쑨원(Wiki)

쑨원은 1923년 광저우에서 중국혁명정부의 대원수직을 맡았다. 당시 그는 양복은 복잡하고 입기가 불편해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중국 전통의상도 중국인들의 향상되는 시대정신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옷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는 남양(南洋) 화교들 사이에 유행되던 상의에 양복 와이셔츠식의 빳빳한 옷깃을 달았다. 이리하여 양복 상의와 와이셔츠의 작용을 겸비하게 됐다. 또 화교 복장의 3개 호주머니를 4개로 바꿔 실용성을 더했다. 아래 쪽 두 개의 호주머니는 넣는 물건의 부피에 따라 부풀 수 있도록 주름을 넣었다.

당시 쑨원이 입었던 중산복(대만 국부기념관)

쑨원이 호주머니를 이렇게 개량한 이유는 책이나 노트 및 업무 필수품을 넣기 위해서였다. 호주머니에는 또 덮개를 달아 물건이 쉽게 분실되지 않도록 했다. 양복 바지는 앞에 구멍을 내고 단추를 사용했으며, 좌우에는 각각 호주머니를 달았다. 뒤쪽 좌우 둔부에도 호주머니를 각각 하나씩 만들고 덮개를 달았다. 이렇게 만든 바지는 편리하고 많은 물건을 지닐 수 있었다.

쑨원을 도와 중산복을 만든 조수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양복점을 경영하던 광둥성 타이산(臺山) 사람인 황룽성(黃隆生)이다. 1902년 12월, 쑨원이 하노이에서 흥중회를 조직하던 중 우연히 황룽성의 양복점에 들어가게 됐다. 황룽성은 쑨원에게 매료돼 흥중회에 가입하고 혁명을 위해 힘쓰겠다고 했다. 이후 쑨원이 중산복을 설계할 때 황룽성은 기획과 재봉을 책임져 첫 번째 중산복을 만들어 냈다.

중산복을 입은 유덕화(sohu)

쑨원은 처음으로 몸소 설계한 중산복을 입어보고 “이 복장은 보기도 좋고 실용적이며 편리하고 저렴하다. 양복처럼 상의와 바지 외에 외투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 또 양복은 수입품이므로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쑨원의 제의는 많은 백성들의 환영을 받았다.

중산복에 담긴 의미

1912년 민국정부는 중산복을 예복으로 명명했고 중산복을 개량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에는 ‘주역’에 실린 주나라 시대의 예절 등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각각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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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앞면의 4개 호주머니는 각각 예, 의, 염, 치(禮, 義, 廉, 恥)를 의미하며 호주머니 덮개는 ‘문(文)으로 나라를 다스림’을 상징한다.

2. 앞자락의 5개 단추는 서양의 3권 분립과 구별되는 5권 분립(행정, 입법, 사법, 시험, 감찰)을 상징한다.

3. 소맷부리의 단추 3개는 삼민주의(민족, 민권, 민생)를 상징한다.

4. 뒤에 구멍을 내지 않음은 국가의 평화통일을 상징한다.

5. 봉폐식으로 접은 옷깃을 사용함은 ‘엄숙하게 나라를 다스림’을 상징한다.

이렇게 전통문화와 민주주의 정신이 담긴 중산복이 공산당 지도자의 이미지를 대표하게 됐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