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노신사가 한국인 영업사원을 껴안고 절규한 사연

By 허민 기자

2012년 11월 12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현대자동차 매장 영업사원이었던 신상묵 씨는 차를 사러 방문한 캐나다 노신사를 만났다.

그런데 이 노신사는 신씨가 한국인임을 확인하고는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큰형이 한국전쟁 참전용사였고 한국에서 전사했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 큰형의 무덤에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형이 한국 어딘가에 묻혀있다고 이야기만 들었지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노신사의 사연을 들은 신씨는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큰형의 이름을 물었다. 형의 이름은 로이 더글러스 엘리어트(Roy Duglas Elliott)였다.

신씨는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사이버 유엔기념공원 홈페이지에서 엘리어트 일병의 묘비를 찾아냈고 이를 현상해 액자에 담아 차를 인수하러 온 노신사에게 전달했다.

신상묵씨가 찾아낸 고(故) 로이 더글라스 엘리엇 상병의 묘비 사진.

이역만리에서 전사한 스무살 형을 가슴에 묻은 열네살 소년, 소년은 마침내 일흔이 넘은 노인이 되어서야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형의 묘비를 볼 수 있었다. 노신사는 신씨가 건넨 액자를 껴안고 절규했다.

고맙다고 울부짖는 노신사에게 신씨는 오히려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당신의 큰형이 있기에 제가 지금 이곳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당시 신상묵 씨가 남긴 페이스북의 사연

신씨는 감동적인 이 사연을 본인의 페이스북으로 전했고 곧 국가보훈처에서 소식이 왔다. 엘리어트 일병의 동생 도널드 엘리어트 씨를 한국으로 초청했다는 것.

형이 전사한지 꼭 60년이 지난 2013년 6월, 엘리어트씨는 마침내 부산 유엔군묘지에서 영원한 스무살 청춘으로 잠들어 있는 형을 다시 만났을 수 있었다.

1951년 4월8일 한국전선의 패트리샤 캐나다 경보병 부대 사진(BIBLIOTHÈQUE ET ARCHIVES CANADA—PA115034)

캐나다는 한국전쟁 당시 2만 7천명의 병력을 파병했으며 516명이 전사했다. 특히 6천명이 넘는 중공군을 단 450명의 병력으로 막아낸 가평전투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캐나다 군은 참호까지 밀고 들어온 중공군을 상대로 후방의 포병대에게 자신들의 위치로 포격을 날려줄 것을 요청하며 죽음으로 전선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이 전투에서의 손실로 중공군은 더 이상의 남진을 포기하고 38선 북쪽으로 물러서게 됐다.

고(故) 로이 더글러스 엘리어트 일병은 캐나다 육군의 프린세스 패트리샤 경보병연대 제3대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며 불과 휴전을 3개월 앞둔 1953년 4월 17일, 스무살의 꽃다운 나이에 숭고한 희생을 치루고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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