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을 잃고 다리마저 절게 된 황후를 끝까지 소중히 여긴 황제

9살에 황위에 오른 명나라 영종은 15살 때 할머니가 고른 전씨를 황후로 맞이했다. 전씨는 집안은 평범했지만 품성이 훌륭했다. 영종을 끔찍하게 아꼈던 할머니의 속 깊은 배려였다.

영종은 황후와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냈지만 안타깝게도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영종은 후궁 주씨와 사이에서 세 아들을 낳았지만 여전히 마음은 황후를 향했다.

영종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환관 왕진의 존재였다. 왕진은 건달 출신으로 과거시험에 연거푸 낙방하다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히자 처벌을 면하려 자진해 거세를 하고 환관이 됐다.

명나라 영종 (이미지=read01.com)

환관 왕진은 글을 좀 읽었기에 영종이 황위에 오르기 전 글선생 노릇을 했다. 이후 어린 영종이 황제가 되어 놀기만 좋아하고 나랏일을 멀리하자, 환관 왕진이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1449년 몽골 오이라트족과 전쟁이 터졌다. 환관 왕진은 중신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영종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나갈 것을 주장했다. 오이라트족 침략지가 자신이 재물을 쌓아둔 곳과 가깝기 때문이었다.

영종은 오이라트족과 전투에서 연전연패 끝에 사로잡혔다. 왕진 역시 죽임을 당했다. 함께 출정했던 신하 60여명도 살해됐다. 이 일은 ‘토목의 변’으로 불리며 치욕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jiemi.baike.com)

영종이 사로잡히자 친척이 황제가 됐다. 황후 전씨는 깊은 슬픔 속에서 영종의 무사귀환을 위해 엄동설한에도 기도를 올리다가 건강 악화로 한쪽 눈을 실명하고 한쪽 다리를 절게 됐다.

새 황제는 영종 구출을 주저했다. 그는 신하들의 성화에 뒤늦게 영종을 구출하긴 했지만 영종과 전씨를 가두고 먹을 것마저 잘 내주지 않았다. 급기야 전씨와 궁녀들이 손바느질로 생계를 이어야 했다.

상황은 반전됐다. 새 황제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영종이 다시 황제가 된 것. 법도대로라면 황태자를 낳은 주씨가 황후가 되어야 했지만, 영종은 전씨를 다시 황후로 앉혔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Shutterstock)

영종은 7년 뒤 사망하면서 황후 전씨가 죽으면 자기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자신이 죽은 뒤 황후가 쫓겨날 것을 걱정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 4년 뒤, 전씨는 숨을 거뒀고 영종의 유언대로 곁에 묻힘으로써 이승에서 못다한 인연을 매듭지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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