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크메르루주 붕괴 39년 경축과 공산당의 말로

[자오페이]

2018년 1월 7일은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붕괴 39주년이 되는 ‘승리의 날’이었습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는 이 날 기념 활동에 약 4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는데, 그중 수천 명은 크메르루주 대학살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사람들입니다. 크메르루주는 바로 과거 캄보디아 공산당이며 중국공산당의 배려로 생겨난 집단입니다.

크메르루주는 인민 대 학살로 유명한 정권이었는데 그 학살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요? 로이터의 데이터에 따르면 170만 명입니다. 크메르루주가 학살을 자행하던 당시 캄보디아 인구는 700만 명 밖에 안됐습니다. 따라서 그 정권은 3년 8개월이라는 짧은 집권 기간 동안 국가 총인구의 24% 이상을 살해한 것입니다. 물론 중국공산당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8,000만 명 이상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공산당은 바로 악마와 같은 존재입니다.

크메르루주는 학살 외에 또 어떤 일을 했을까요? 그 정권은 중국공산당(중공)으로부터 내부 권력 투쟁, 개인재산 몰수, 신앙박해, 대약진 등을 배워서 중공보다 더 극단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중공의 경우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기 위해, 부자(父子)와 부부간에 서로 적발하여 비판하게 유도했습니다. 그러나 크메르루주는 직접 가정이란 것 자체를 해체했습니다. 대신 남녀 생산대를 조직해 아이를 낳게 하고, 태어난 아기는 공동으로 양육했습니다. 이는 정말 철저한 혁명이고 철저한 재난입니다.

크메르루주가 붕괴한 후 캄보디아 전체 170개 현 중 81개 현에서 탐사 활동을 진행했는데 시체를 매장한 구덩이가 9,138개, 그 속에서 150만 구에 달하는 해골이 발굴됐습니다. 크메르루주는 ‘21호 안전감옥’이란 것을 지었는데 바로 강제 수용소입니다. 여기에는 최대 14,000여 명이 감금될 정도였지만, 크메르루주가 붕괴할 때에 이 안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겨우 7명이었습니다. 이런 생존율은 아마 나치 강제 수용소보다 적을 것입니다.

(www.history.com)

현재 대학살 박물관으로 바뀐 이곳에는 공산당의 사악한 행위의 증거가 아주 많습니다. 그중에는 인간의 뇌를 산채로 끄집어내는 기계도 있습니다. 이 수법은 저우언라이(周恩来, 전 중국 총리)한테서 배운 것입니다. 만약 크메르루주가 붕괴하지 않았다면 이 강제 수용소의 생존자 7명도 곧 사망했을 것이고 이 감옥의 이야기는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1962년에 중공 중앙 군사위원회는 사형수 혹은 중형수(重刑囚)는 국가 및 사회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면 그에 따라 혁명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중국의 한 노 군의관에 따르면 이 규정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지금 이 규정은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요?

장쩌민과 중공은 ‘파룬궁 수련인을 계급의 적으로 규정’하고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어떤 처리도 할 수 있고 상부에 보고할 필요도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파룬궁 수련인의 몸에서 장기를 꺼내서 팔아먹은 만행의 근거 규정입니다.

중공이 붕괴하는 그날, 캄보디아의 21호 안전감옥과 비슷한 감옥들이 많은 지역에서 발견될 것입니다. 그땐, 정말 세상이 깜짝 놀랄 것이고 공산당원이라는 것은 가장 치욕스러운 신분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현재 중공의 당단대(党团队) 조직에서 아직 탈퇴하지 않았다면 빨리 탈퇴하시길 바랍니다.

중국공산당 내부투쟁의 역사는 매우 많습니다. 패배하여 위험을 느낀 지도자는 빠르게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린뱌오(林彪, 전 중국 부총리)가 대표적인 예이고, 패배자는 소련이나 베트남으로 도망갔습니다. 크메르루주 내부 투쟁에서 패배해, 베트남으로 도피했던 자 중의 하나가 바로 후에 캄보디아 총리가 된 훈센입니다.

크메르루주 내부 투쟁과 맞물려 국제공산당도 당내 투쟁이 벌어져, 중공이 지지하는 크메르루주와 소련이 지지하는 베트남 사이에 국경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훈센은 크메르루주에 몸담고 있다가 참혹한 대학살극이 벌어질 때 그들과 거리를 두었고 후일 베트남으로 도주했습니다.

1978년 12월, 베트남과 훈센은 크메르루주를 공격했습니다. 1979년 1월 7일, 프놈펜이 함락되어 크메르루주가 무너집니다. 이때부터 훈센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훈센은 1982년 부총리에 오르고 1985년 32세로 총리 자리에 오릅니다.

1991년, 소련공산당이 해체되면서 국제 냉전이 종결된 후 캄보디아는 일당제와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입헌 군주제 국가로 되었습니다. 유엔과 캄보디아는 특별법정을 설립하고 크메르루주의 주요인물에 대해 심판을 진행했습니다. 죄명은 인종 학살죄, 전쟁죄와 반인류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역사를 점검해 보는 것은, 현재 중공을 추종하는 많은 사람에게 자신들의 행위가 어떤 범죄에 해당하는지를 알려주고 싶어서입니다.

기사 원문 : http://www.ntdtv.com/xtr/gb/2018/01/11/a1358781.html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