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원조 안받겠다”…컨테이너로 다리 전면봉쇄한 마두로

군부, 콜롬비아 국경 다리 봉쇄…”美군사개입 위장하려는 정치쇼”
폼페이오 美국무 “베네수 국민은 지원 절실히 필요” 비판

(멕시코시티·워싱턴=연합뉴스) 국기헌 임주영 특파원 = ‘한 나라 두 대통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이번에는 해외 원조를 차단한다는 이유로 국경 다리를 전면 봉쇄하는 조치에 나섰다.

베네수엘라 국민은 극심한 경제난으로 식품과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부는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지원의 반입을 막고 있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국가수비대는 전날 유조 탱크와 화물 컨테이너를 동원해 콜롬비아 국경도시인 쿠쿠타와 베네수엘라 우레나를 연결하는 티엔디타스 다리를 막았다.

파란색 컨테이너 2개와 주황색 유조 탱크 하나가 다리 위 3개 도로를 완전히 가로막아 차량 통행을 차단했다. 다리 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감시 카메라까지 달았다.

쿠쿠타는 브라질-베네수엘라 국경, 캐리비안해의 한 섬과 함께 국제사회의 구조물품이 집결하는 장소다.

수비대가 구조물품 공급로 차단에 나선 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거절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마두로 정권은 미국 등 우파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을 경우 내정간섭과 마두로 대통령 퇴위의 빌미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마두로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지난달 23일 임시대통령을 자처하고 미국과 호주, 캐나다, 유럽연합과 중남미의 주요국가 등 우파 국제 사회가 이를 지지하면서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RT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원조 물품 전달은 미국의 군사개입을 위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제국주의는 죽음을 야기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국영 TV 연설에서도 미국과 캐나다가 비상 식품과 의약품 등을 보내려는 움직임에 대해 “우리는 거지국가가 아니다”며 거부한 적이 있다.

해외의 원조 물품 전달은 야권이 마두로 정권에 도전하고 마두로를 권좌에서 축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는지를 판단하는 시험대로 간주된다.

야권의 반정부 운동을 이끌고 있는 과이도 의장은 자국의 식품·의약품 부족 사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인도주의적 원조를 호소한 바 있다.

현 상황을 ‘비상사태’ ‘위기상황’으로 규정한 과이도 의장은 지난 6일 베네수엘라 군부에 해외 지원물품의 국내 반입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베네수엘라 공군의 프란시스코 야네스 장군이 과이도 의장 지지를 선언했지만, 대부분의 고위 장성은 마두로 대통령을 떠나지 않고 있다.

과이도 의장의 호소에 미국은 2천만 달러, 캐나다는 4천만 달러의 원조를 약속했고, EU는 500만 유로의 원조를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다. EU는 지난해 3천400만 유로어치의 원조를 제공했다. 독일도 500만 유로의 지원을 결정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글을 올려 “베네수엘라 국민은 인도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마두로 정권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원조를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도와주려 노력하고 있지만, 마두로의 명령에 따라 베네수엘라 군대가 트럭 등으로 원조를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두로 정권에 대해 “굶주리는 국민에게 원조가 도달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부분은 대문자를 사용해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베네수엘라에서 선적용 컨테이너와 유류 운반용 차량 등이 도로를 가로막고 있는 사진도 함께 올렸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인도적인 행동은 정치와 군대, 다른 목적들과 별개로 필요하다”며 “베네수엘라 국민을 위해 양측이 정치적인 협상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치러진 대선에서 68%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야권은 유력후보들이 가택연금과 수감 등으로 선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치러진 대선은 무효라며 마두로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살인적인 물가상승, 식료·의약품 등 생필품난과 정정 불안을 견디지 못해 2015년 이후 베네수엘라 인구의 약 10%(3천278만명)에 육박하는 300만명이 조국을 떠나 콜롬비아나 페루 등 인근 국가로 이주했다.

베네수엘라 국민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8개월 전에 베네수엘라를 떠난 레오네트는 로이터에 “도움이 절실하다. 우리 아이들은 끓인 바바나 껍질을 먹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리비아 바르가스라는 여성도 “우리는 절박한 상황”이라며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마두로는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최근 베네수엘라 관련 예산을 종전의 두배인 1천800만 스위스프랑으로 늘리고, 콜롬비아와 브라질로 이주한 베네수엘라인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립적이며 독립적인 원조기관인 ICRC는 베네수엘라 적십자와 협력해 특정 정치 세력의 편을 들지 않은 채 보건의료 부문에 집중해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편 베네수엘라 정부는 미국의 개입행위를 거부한다는 시민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정부는 1천만 명의 서명을 모아 미국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관영통신 AVN이 전했다.

penpia21@yna.co.kr,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