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장교가 입던 군복 세트 세상에 나왔다

고종이 지방 질서 유지를 위해 설치한 최초의 근대식 군대이자 대한제국 신식 군대인 진위대(鎭衛隊) 장교 군복 일체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군복은 예복(禮服)과 상복(常服) 상·하의와 모자·외투·멜빵·도대(刀帶)로 구성되며, 1900년 7월 ‘대한제국 육군장졸복장규정’ 개정 이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육군사관학교(교장 정진경 중장) 육군박물관은 대한제국 시기에 오늘날 중위에 해당하는 부위(副尉)를 지낸 황석(1849∼1938) 가문이 보관해온 군복과 초상화, 문서 등 유물 68건 80점을 지난 2일 기증받아 일부를 18일까지 특별 공개한다고 4일 밝혔다.

장수 황씨인 황석은 조선 초기 이름난 재상인 황희 후손이다.

채용신이 그린 황석 초상(육군사관학교)

그는 1896년 민영환 추천으로 47세라는 늦은 나이에 육군 소위인 참위(參尉)에 임명돼 울산에 주둔했고, 황해도 해주·평안도 평양·전라도 전주를 거쳐 서울 본대로 적을 옮겼다.

서울 본대에서 부위로 근무하다 1906년 11월 재무행정을 관할하는 탁지부(度支部) 세무관에 임용됐고, 이듬해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면서 해임됐다. 1908년에 강릉재무서장에 올랐으나, 일제가 한반도를 병합한 1910년 퇴직해 전북 남원으로 내려갔다.

그는 낙향 당시 “10년간 관직 생활을 해 부모를 임종하지 못해 불효했고, 군문에 재직하면서 나라를 지키지 못했으니 불충하다”고 털어놨다고 전한다.

대한제국 장교 군복(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이 기증받은 의복 중 예복을 보면 소매 끝이 붉고 부위 계급을 알려주는 금줄 2개가 있다. 팔꿈치 부근에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을 금실로 수놓았다. 목 부분에는 별이 하나 있는데, 이는 위관급 장교임을 나타낸다.

상복은 예복과 비교하면 훨씬 수수하고, 단추가 일렬로 달렸다. 말을 탈 때 불편하지 않도록 단추가 위쪽에만 있고 아래는 펑퍼짐한 점도 특징이다. 모자는 모두 앞면 가운데에 오얏꽃 무늬를 부착했으며, 예복 모자에는 깃 장식도 있다.

대한제국 장교 군복(육군사관학교)

외투는 앞쪽에 단추가 두 줄로 달렸고, 뒤쪽에도 단추가 있다. 소매 중간에는 별 한 개와 흰색, 붉은색 줄이 있다.

근대복식사를 전공한 이경미 국립 한경대 의류산업학과 교수는 “예복과 상복, 외투, 모자, 멜빵, 도대가 세트를 이뤄 보존된 사례는 거의 없다”며 “연세대에 윤웅렬 군복, 고려대에 민영환 군복이 있으나 이들은 계급이 황석보다 훨씬 높고, 유물이 이처럼 다양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제작 시기는 1900년부터 1906년 사이일 가능성이 큰데, 무관 멜빵이나 상복 모자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며 “사용자를 명확히 알 수 있고, 상태가 좋다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황석을 탁지부 세무관에 임용한 문서.(육군사관학교)

황석 증손인 황일주 씨는 2일 기증식에서 “선조 유품을 박물관에 기증해 영광스럽다”며 “조상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긍지와 자부심을 품고 열심히 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진경 교장은 “육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대한제국 무관학교 기념관 설립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며 “기념관이 세워진다면 황석 군복은 대표 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육군박물관은 유물 연구를 통해 문화재 지정이나 등록을 추진하고, 내년 1월부터 상설 전시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