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늦게 걸려온 전화

아버지는 투병 중이었다. 어머니는 분명 돈이 있었는데도 결국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 일은 천추의 한이 됐지만 전화 한 통으로 아픔이 치유되면서 모녀 사이의 앙금도 씻은 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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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군(曉君)내 어머니는 냉정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는 늘 담담하게 무표정으로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소군은 고향을 떠나 먼 곳에서 생활했고, 어쩌다 전화를 해도 통화 시간은 아주 짧았다

소군과 어머니의 사이가 벌어진 것은 15년 전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였다. 중병에 시달리던 소군의 아버지는 집에서 죽을 날만 기다렸다. 소군의 어머니는 그저 침묵만 지킬 뿐 아버지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그래서 화가 난 소군은 어머니와 멀어지게 됐다

기사와 관련없는 사진 (Facebook | Ngăn bàn kí ức Chấn Hoa

처음부터 소군과 어머니의 사이가 벌어진 게 아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성품이 온유해 아버지는 물론 소군과도 다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날부터 소군은 어머니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얼굴만 봐도 화가 났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던 그녀는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놀랍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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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서 차라리 그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집에  자주 가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세월이 흐르면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더욱 커지면서 모녀 사이는 더욱 벌어지고 말았다.

15년 전 아버지가 중병을 않았을 때, 어머니는 수중에 10만 원이란 적지 않은 돈이 있었지만 물끄러미 바라보기만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갈수록 고통스러워했고 몸은 겨울철 마른 풀처럼 수척해져 갔다.

그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소처럼 행동했고. 그런 어머니의 뒷모습만 보아도 소군은 화가 치밀었다.  때때로 ‘저 사람이 내 엄마가 아니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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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은 무척 추웠다. 눈이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모진 한기는 마치 불개미가 깨무는 듯 피부에 예리한 통증을 느끼게 할 정도였고, 마음마저 꽁꽁 얼려 버리는 것 같았다. 소군은 그처럼 매서운 추위를 한동안 경험하지 못했다. 그녀가 집을 떠나 수 년 동안 대학을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한 북쪽 지역은 고향보다 날씨가 따뜻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추위에 적응하지 못한 소군은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동상에 걸렸다. 물론 어릴 적에도 동상에 걸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외지에서 생활하는 동안은 그렇지 않았는데, 고향에 돌아오자 예전처럼 다시금 동상에 걸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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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후 소군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힘들더라도 이곳에서 정착하기 위해서다. 상투적인 안부 전화 따윈 필요 없었다. 사실 그녀에게 어머니란 없으나 마찬가지였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여느 가정의 딸처럼 어머니를 염려하는 듯 가식적으로 행동했다. 때문에 가끔 자신이 위선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군은 어머니를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도무지 마음을 열 수 없었다. 하루는 그녀가 외출했을 때 어머니에게 온 전화가 울렸다. “밥을 해 놓았으니 집에 와서 먹자꾸나소군은 쌀쌀맞게 답했다. “친구랑 밥을 먹었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혼자 드세요.” 전화기 너머로 힘없는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알았다. 밥을 남겨 놓을 테니 밤에 와서 배고프면 먹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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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처럼 늘 딸을 걱정했다. “조심하고 혼자서 늦게까지 다니지 마라. 너무 늦을 경우에는 내가 데리러 나가마.” 그날따라 10여 분이나 긴 통화가 이어졌다. 예전의 소군이라면 벌써 전화를 끊었을 텐데.

그녀의 어머니는 원래 말이 없는 편이었지만, 소군 앞에서는 말이 많아졌다. 그러나 소군에게는 모두 잔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그녀는 오랜 세월 어머니를 증오했으며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그녀를 대했다. 그런데 이 모든 앙금이 전화 한 통으로 눈 녹듯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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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늦게 온 전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집에는 10만 원의 현금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그 10만 원은 다른 사람의 돈이었기 때문이다. 그 돈의 주인은 아버지의 친구였는데, 그는 이혼하면서 아이들 양육을 아내에게 맡겼다. 그러다가 작업 중에 사고를 당했고, 병원에서 숨을 거두기 전 소군의 아버지에게 자신이 모아둔 10만 원을 맡기며 헤어진 아내와 자식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미 이혼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났기에 망자의 부인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소군의 아버지는 이들을 찾으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세월은 점점 흘렀다.

그러다가 소군의 아버지가 병이 들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10만 원을 당신 치료비로 씁시다. 우선 쓰고 나서 나중에 채워 넣으면 되지 않겠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 돈을 쓰면 나는 조금 더 살 수 있겠지. 그래도 얼마 가진 않을 거요. 내 몸은 내가 잘 아는데 돈을 쓴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소. 하지만 그 돈을 채우려면 당신과 소군의 고생이 심할 거요.  내가 죽더라도 당신은 반드시 그들을 찾아서 돈을 돌려줘야 해요. 어쩌면 그들이 우리보다 돈이 더 필요한 지경일 수도 있소.”

YouTube | 影像記意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슬픔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세월 부부로 지낸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사람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늘 강조할 정도로 바른 사람이었다.

소군의 어머니는 사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드디어 아버지 친구의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 남편이 떠난 지 20년이 지나서였다. 그분들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전화를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소군이 그 전화를 받았고, 오랜 동안 묻혀 있던 진실을 알게 됐다.

그녀는 놀랐다. 그동안 그런 사실도 모르고 어머니를 원망하고 살았다니! 이웃들은 우리 부모님이 늘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고 한다.

진실을 알게 된 소군은 어머니를 끌어안았고, 어머니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젠 내 딸이 다 컸네.” 그리고 어머니는 술 한 잔을 마셨다. 아버지가 생전에 즐기시던 백주였다. 취기가 돌자 어머니가 조용한 음성으로 소군에게 말했다. “네가 집을 떠난 후 눈물을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단다.”

그녀는 딸과 가정을 지키고자 묵묵히 모든 고통을 감내했고, 결국 하늘은 두 사람에게 화해라는 소중한 선물을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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