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신년음악회’, 그 특별함의 美學

비엔나 ‘신년음악회’, 그 특별함의 美學

빈필하모니오케스트라 2020 신년음악회를 지휘한 안드리스 넬슨스. |Photo by HANS PUNZ/APA/AFP via Getty Images

2020/02/02

“그대는 아는가 , 저 레몬꽃 피는 나라를, 짙은 잎사이로 황금빛 오렌지가 이글거리고 푸른하늘엔 한가닥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곳···.”<괴테>

빈 소년 합창단 연주.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레몬 꽃이 피는 곳>
까치설날의 우리 옛 풍속은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나라마다 새해의 염원을 담은 행사는 다양하게 이어지고 있다. 매해 이렇게 시작되고 반복되는 이 보편적인 기념, 서약과도 같은 이 예식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클라식음악계에서는 아름다운 연주홀에서 가장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올리는 신년음악연주가 있다. 매년 1월 1일 , 음악의 수도 오스트리아의 빈, 황금홀(무직페라인: Musikverein)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연주는 클래식 음악의 ‘사건’이다.

올해로 80회를 맞이한 신년음악회. 수천만 세계인과 함께한 이 전설적인 ‘예술의 전당’에는 실로 어디라고 경계지을 수 없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신화적인 아우라가 있다.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말러, 쇤베르크···. 많은 음악가들의 이름이 출몰하는 이 빈의 정신은 음악의 정신이자, 우리세계역사의 기저에 흐르는 전통에의 향수와 무관하지 않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는 1940년을 시작으로, 1958년부터는 유로비젼(Eurovision)의 TV 생방송 중계로 관중을 매료시켰고, 금년에는 90여 개국 오천만 세계인이 함께 본 세계의 콘서트가 됐다. 올해는 41세의 젊은 바리톤 트럼펫 연주자인 안드리스 넬슨스(Andris Nelsons)가 지휘했다.

안드리스 넬슨스 지휘. 2020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

슈트라우스 곡이 흐르는 비엔나

모차르트, 하이든을 위시한 오스트리아의 음악 전통은 19세기 슈트라우스 일가의 왈츠곡의 열정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1842년 창단된 빈필하모니는, ‘코스모스 우주의 재현’이라는 ‘오케스트라’라는 지상무고한 음악정신을 가지고,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대를 빠져나왔다. 올해도 크리스탈과 꽃으로 장식된 문을 열면서 새해를 축하하고 있다. 악단과 함께 지휘자는 각국어로 새해인사를 한다. gutes Neues Jahr(구테스 노이에스 야르)!, happy new year(해피 뉴 이어)!, bonne annee(본 나네)!, 新年快樂(신녠콰이러)! …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서 지켜온 전통

신년음악 연주는 20세기 초 유럽의 대전쟁으로 타격받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지나왔다. 요한 슈트라우스가(家)의 왈츠곡과 폴카, 행진곡으로 오스트리아의 전통적 취향을 복구해낸 빈의 음악사는 1939년 12월 31일, 오스트리아 병합이 이뤄진 나치 하에서 클레멘스 크라우스(Clemens Crauss) 지휘로 열린 첫 연주를 기록하고 있다.

빈은 독일의 베를린이 아니다. 유럽의 신성로마제국의 두꺼운 역사를 배경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시대를 거쳐야했던 오스트리아의 빈. 그후 독일과의 정치문화적 주름들 속에서도 중부 유럽인들의 미묘한 정서가 혼효되있는 그들 특유의 삶의 방식에는 우수적이면서도 경쾌한 이색의 정감이 녹아 있다.

나폴레옹 혁명시기를 이은 19세기의 유럽은 실로 문화, 예술, 철학, 과학, 사상의 전 세계적인 성운의 운집 속에 있었다. 이전의 고전적인 이상향과 새로이 고조되는 낭만주의적 이상의 다중적인 교차에, 열렬한 민족주의적 감정까지 파도치며, ‘도주의 선’을 달려가는 말처럼 새로운 시대와 위기의 세기를 예고하는 시대였다. 지중해로부터,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중유럽, 발칸제국, 터키제국, 북유럽, 러시아제국, 중국, 아시아 까지···. 따라가 보면 지상의 모든 곳이 세차게 질주하는 말발굽 아래 이는 풍진으로 장막을 내리친 시대였다.

‘빈 음악협회(빈 무직페라인)’은 발레와 오페라, 교향곡의 시대를 연 유럽의 음악인들이 1812년 ‘음악친구회’의 이름으로 설립해 빈의 음악 정신을 이끈 곳이다. 훗날 브람스와 부르크너의 교향곡을 탄생시킨 ‘빈 음악협회’에는 브람스, 슈베르트, 루빈슈타인 등 역대의 대음악가들이 회원으로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궁정 오페라극장’ 소속의 관현악단이 변신하여 1842년에 창단되었다. 그 후 1870년에 새로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된 ‘빈 음악협회 뮤직하우스’에서 그들의 음악적 열정은 충분히 개화(開花)될 수 있었다. 건축가 테오필 한센의 서명으로 완성된 고풍격의 아름다운 뮤직하우스. 이곳 ‘황금홀’에서 올린 빈 필의 개관연주가 ‘신년음악 연주’의 먼 기원이 될 것이다.

당대 빈의 상류층 귀족과 부르주아 은행가, 산업가 자선가들의 강력한 후원과 국가의 지지로 건립된 엘리트 음악세계가 많은 세계인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며 오늘날까지 정통문화의 정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유럽 예술문화의 거울

베토벤 이후, 리스트, 브람스, 바그너···. 대 음악가들의 시대, ‘빈 필’은 ‘베를린 필’과 함께 최상급의 오켸스트라다. 이 권위의 빈 필이 이미 인기가 높아진 슈트라우스의 ‘가벼운’ 곡을 호의한 것은 아니다. 1873년 슈트라우스의 곡이 처음으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 자신의 지휘로 연주되었지만, 열렬한 환호를 얻는 것은 한참 후이다. 1929년에서 1934년 사이 빈 국립오페라와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던 클라멘스 크라우스가 이 악곡들을 선보이면서 거둔 ‘잘츠부르크 연례 페스티벌’ 연주의 성공이 발판이 된 것이다.

신년음악연주가 제도화된 것은 20세기 고조된 나치즘 하에서 오스트리아 합병의 운명과 함께 체제에 동조하면서 활약한 크라우스의 역할이 크다. 그러나 히틀러도 좋아한 이 ‘기분전환’의 왈츠곡들. 나치의 깃발 아래서 동계원조사업 (Winterhilfswerk :WHW)의 이름으로 전쟁의 우울한 정서를 퇴치하고 사기를 높이기 위해 조직되었지만, 신은 마치 그렇게 배치하지 않았다는 듯하다.

중부유럽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전통적 취향을 고무시킨 음악은 역사 이상의 결실로서 누구나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자신의 남국, 작은 코스모스의 향수를 더욱 깊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괴테의 시에 붙여진 ‘레몬꽃 피는 남쪽나라’, ‘남국의 장미’, 보헤미안의 폴카 ‘천둥과 번개’. 모두 사람의 호선지심(好善之心), 오악지심(惡惡之心)의 본성으로부터 추구되는 자연에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과연, 나치시대 거짓 깃발 하에서 연주를 듣고 있는 군인들의 사진을 보면 더욱 애절한 질문으로 이끈다. 왜 인류는 전쟁으로 가는가, 마치 자유를 위한 것처럼···.

푸르트벵글러 지휘. 바그너<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잠재적인 작은 코스모스

이런 전통에서 고전적이면서 축제적인 곡을 선사하는 이 신년연주에는 빠짐없는 3가지 레파토리가 있다.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강’, 빠른 폴카, 그리고 행진곡이다. 가벼운 기분곡이라고 평가되었지만, 슈트라우스 당대의 리스트, 브람스, 바그너까지도 사랑했던 왈츠곡, 보헤미안 무곡, 행진곡들에는 미묘한 원천적인 생명의 리듬이 있다. 경쾌한 3박자 내부의 절묘하고 섬세하기가 복합적인 리듬의 슈트라우스 왈츠곡은 듣기는 쉬어도 연주하기는 무척 어려운 곡이다.

박자가 스트레오타입으로 너무 외면으로 나가서는 안되고 왕래반복의 ‘원무’적 숨결의 섬세함으로 우아한 리듬을 일으켜 내야한다. 나가는 듯 들어오고, 오르는 듯 내려가면서 어느새 이어지는 숨결의 반복운동은 순환하는 생명, ‘작은원들’의 율동이다. 느리게 시작한 서주로 한낮을 보내고 들어온 피로를 황혼녁의 ‘코다’로 가라앉히는 듯, 되돌아 다시금 새로이 시작하는 리듬이 ‘왈츠’다. 돌다, 회귀하다라는 뜻으로 사물의 본원적 운동이다. 그래서 빈 특유의 왈츠리듬으로 흐르는 선율적 풍경에는 원천적인 노스탈지적 비밀이 있다. 남국을 찾아 방랑하는 우리 영혼의 잠재적인 코스모스, 작은 노래소리, 리뚜르넬(ritournelle; 리또르넬로).

사람은 종종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득한 옛날이 지금인 것 같은 이상한 기억, 파라암네지아(paramnesia)라고 하는 그런 순수한 회상, 순수한 상태에서 눈물이 올라오는 경험을 한다. 생명의 비밀이리라. 지나간 모든 과거가 지금 여기 한 순간에 층층히 공존하며 열린 은빛공간, 잊혀졌던 고향에 돌아간 듯, 표현할 수 없는 향수이다. 그래서 상상 속의 ‘ 빈 숲의 이야기, 봄의 소리’는 늘 왈츠곡의 훌륭한 모티브이다.

전통예술 그 아름다운 미덕

생명은 이미 ‘반신(半神)적이다. 생명의 철학자 베르그송(1859-1941)은 ‘생명의 승화’를 생명의 궁극적인 이유로 보면서 진정한 예술과 신성(神性)의 경지를 함께 놓았다. 그는 “예술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만일 우리가 자연 속에, 사물 속에 직접 들어가 동화될 수 있다면 달리 예술 작품이 없어도 우리자신이 예술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전언은 지금 21세기 현대 사상의 지표다. ‘신들의 판테온’에서 생명의 귀환을 기념하는 음악, 전통예술에는 생명의 신(神)적인 승화로서, 시간을 정화하는 미덕이 있다.

황금의 시대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1632-1677)는 “순수한 기쁨(laetitia)은 생명을 고양시키는 원천적인 힘”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는 원천적으로 흐르는 기쁨의 선정이 있다”라고 말했다. 기쁨의 선정은 매순간 잊혀지는 과거의 기억을 회복시키고 정화하면서, 우리에게 내재해있는 자연(Nature, 본성)을 느끼고 그 진상을 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는 생애 15년 동안 ‘윤리학(에티카)’를 저술하면서, 그토록 어렵지만 가능한 ‘신(神) 즉 자연’과 합치되는 지복(至福)에 이르는 길을 인도했다.

마술적인 중용의 기획

신년음악의 또 다른 특징은 ‘마술적인’ 기획이다. 연주 형식과 레파토리의 엄격한 전통 속에서 매해 다른 지휘자를 선정해 새로운 풍경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슈트라우스의 명곡과 동시대의 마이너 곡들을 배치하는 연금술적 기획은 ‘중용’이라는 전통적 가치의 음악적 교훈이기도 하다. 누구나 기대하는 슈트라우스의 곡과 새로 만날 작곡가의 선곡은 엄격한 음악적 규칙을 더욱 풍요롭게 리듬짓는다. 모두 오스트리아의 고향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이번에는 독일에서 태어나 빈을 떠나지 않았던 베토벤의 ’12 콘트라춤곡’이 들어있다.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베토벤의 ‘영웅’ 속에 공명하는 곡이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조화의 사랑’, 즉 필하모니(philharmony)의 이름에 합당한 배치다.

변치 않는 세기의 앙코르곡도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다. 관중이 함께 카덴차의 박수로 장단을 맞추는데, 클래식 연주장에서는 아주 예외적인 장면이다. 세기를 계속해 온 이 앙코르곡에, 사람은 모두 대지의 소박한 어린아이들일 것 같다.

연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전설적인 ‘라테츠키 행진곡’ 속에서 지휘자의 익살과 관중의 카덴차의 손뼉은 공감된 코스모스를 즐겁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빈 필하모니의 소리를 변함없이 기억한다고 한다. 음악당을 떠나서도 마음에 공명하여 회상되는 기쁨의 선정이 남아 있을 것이다. 사람은 음악에 의해서 모두 한 천체에서 숙식하고 있는 별들이라고 고전은 전하고 있다.

조르즈 프레트르 지휘. 요한 슈트라우스 1세 <라데츠키 행진곡>

매년 독특한 리듬과 선율적 풍경을 만들어내는 비엔나의 신년음악연주는 올해까지 80년의 기원으로 매해를 기념하고 있다. 정확히는 새해를 기념한다기 보다는, 새해 자체가 스스로를 기념하며 사람은 그 속에서 서약을 실현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 “예술은 우주적 예식이며 그와 함께 커간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의 최대미학이 그곳에 숨 쉬고 있다.

지휘자들의 왈츠

역사는 현재에 몰입하지만, 예술은 정도로 인도한다.

인류역사의 파라독스다.

1939년의 신년연주는 1986년 까지 3인의 지휘자들로 이어졌고 (클레멘스 크라우스 , 빌리 봅스키, 로린 마젤), 그후 1987년부터는 전통에 따라 매년 초빙된 지휘자로 연주된다. 허버트 본 카라얀, 클로디오 아비도, 니콜라우스 하논쿠르트, 주빈 메타 등 대악장의 지휘봉 아래서 음악당은 비견할 수 없는 울림으로 채워졌다.

제3제국 히틀러 나치의 돌입으로 체제 동조적인 클라멘스 크라우스. 그의 활약은 참으로 보수적이었지만 오스트리아 전통의 음악적 감흥을 살려내어 인류가 위기의 시기를 지나갈 수 있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진 빈필의 특성이 있다. 오랜 역사의 단련으로 이룬 그들의 자주적 운영체제는 신년 콘서트의 특이함을 유지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전후 1946년 나치청산의 재판 중에서 조셉 크립스가 클레멘스 크라우스를 대신하여 2년간 자리를 지켰고, 그의 서거 이후 1954년에 제1바이올린 연주자인 빌리 보스코비치(Willi Boskovsky)가 계승하면서 1986년까지의 상임 지휘자 시대를 끝냈다. 1987년부터는 오케스트라단이 매년 지휘자를 선정, 초빙하여 그에게 지휘의 영광을 베푼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단 음악가들 간의 힘의 관계도 바뀌면서 새로운 힘의 균형을 만들어가는 길에는 매력적인 연주들이 많았다.

한 예만 들어보자. 1989년의 카를로스 크라이버는 ‘완벽한 천재’로 음악과 오케스트라의 모양을 변신시킨 지휘자이다. 연주해석가라기보다는 창조자에게 붙여지는 ‘천재’의 음악상을 만들어낸 이 쉐프의 손에 닿는 것은 모두 금으로 바뀐다. 그의 화려하고 감각적이기까지한 지휘하에 연주는 커다란 감정의 기복에도 불구하고 장려한 평화로움 속에서 본연의 노스탈지적 기쁨이 충만하게 표현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천둥과 번개>

정규적으로 초빙된 로린 마젤, 리카르도 무티, 주빈 메타, 카라얀, 마리스 얀손스는 개성적인 비젼을 새겨넣은 지휘자들이다. 또 베르나르 하팅크처럼 거절한 이들도 있어 비엔나 필하모니의 권위를 크게 민망케한 경우도 있다.

올해의 지휘자 안드리스 넬슨스는 마리스 얀손스의 정신적 아들이라 불리는 발트해 연안의 라트비아인이다. 겔트 족의 오랜 기원을 갖는 북유럽의 넓은 평원의 발트국, 역시 전쟁의 혹독한 역사를 겪으면서 1941년 소련에 합병될 때는 십수만인들이 해외로 이주했고 또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면서 죽음을 맞이했던 나라다.

바리톤의 트롬펫 연주자인 그는 바하 이전의 고대음악을 공부한 젊은 재능으로 마리스 얀손스의 눈을 끌었었다. 그리고 지휘자라면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고전음악의 정점인 심포니 (Symphony)의 장대한 서막을 기원하면서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의 자유, ‘영웅’의 대연주를 꿈꾸고 있다.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으로, 이미 시작된 ‘미완성’ 심포니10번은 ‘신들의 판테온’ 속에서 인류의 꿈을 기약하고 있다.

/에포크타임스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