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아이슈타인의 6가지 비밀

3월 14일은 현대 과학의 거두이자 천재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의 생일이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자의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스위스 특허국 검사관으로 일하던 26살 청년 아인슈타인은 1916년 상대성 이론을 발표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100년이 지난 후, 과학자들은 천문 관측을 통해 ‘중력파’의 존재를 증명하며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맞음을 확인했다. 우주의 시공간은 가변적이며 변화무쌍해서 관찰 방법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천재의 대명사다. 그러나 이 천재 과학자의 업적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위대하다.

1. 우리는 날마다 아인슈타인을 만난다.

1921년 아인슈타인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만든 ‘광전 효과 이론’이 없었다면, 텔레비전도 없었고 20세기의 전자 기술의 큰 변혁도 없었을 것이다.

1905년에 발표한 광전 효과에 관한 그의 논문을 바탕으로 텔레비전 광전관이 만들어져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텔레비전이 생산됐다고 한다.

광전 효과의 원리는 각종 모니터, 스마트폰, 디지털카메라 등 다양한 전자기기에 사용되고 있다. 2004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이 밝혔듯 우리는 날마다 아인슈타인을 만나고 있다.

2. 유엔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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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유대인과 독일인의 혼혈이었다. 당시 나치는 명성이 자자한 아인슈타인의 자유로운 학문적 견해를 용납하지 않았고 독재자 히틀러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독일을 떠나 유엔 난민이 되었고, 훗날 미국 뉴저지에 정착했다.

3. 가장 사랑한 것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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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위대한 물리학자지만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어린 시절 스스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터득한 그는 외출할 때 항상 바이올린을 들고 다니며 틈만 나면 연주를 했고 피아노도 자주 쳤다고 알려져 있다.

아인슈타인은 어렸을 때 “나는 물리학자가 아니면 음악가가 될 거예요. 나는 음악을 즐기고 음악에 대해 생각하며 많은 상상을 해요. 음악은 제 인생이며 가장 큰 기쁨이죠”라고 말했다.

4. 대통령은 되고 싶지 않아

아인슈타인은 이스라엘 대통령으로 추대받았지만 거절했다. 과학자이자 철학자로 정치와 권력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5. 비과학적 방법으로 과학적 문제를 연구하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과 에너지 방정식에 대해 저명한 과학 이론들을 발표했지만, 그는 늘 “연구는 실험실에서보다 생각에 의한 부분이 많았다”라고 했다.

어린 시절 그는 머릿속에서 빛에 대해 실험을 했기 때문에 ‘시간은 속도에 따라 변한다는 특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두 번째로 ‘시공간 가변 상대성 이론인 일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다.

NASA/Ames Research Center/C. Henze

이 같은 독특한 연구 방법은 기존 경험 과학의 범위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을 때, 과학계에서 이 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6. 자기 죽음을 예측하다

1955년 4월 17일 아인슈타인은 혈관 파열로 대장내출혈을 일으켰다. 대동맥류 파열은 심근경색처럼 견디기 힘든 통증을 수반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침착한 모습으로 지냈다.

그는 치료를 거부하고 의사에게 평온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시간의 흐름을 압니다. 억지로 수명을 연장하려 든다면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되겠지요. 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할 일을 했습니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네요. 우아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고 싶군요.”

이튿날 아침, 아인슈타인은 향년 76세의 나이로 뉴저지에서 평안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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