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된 ‘태아 만 명’을 묻어준 남자

IVCE(베트남 문화교육연구회)는 팬현두(Phan Huyen Thu)가 제작한 ‘아가야, 미안해’를 베트남 다큐멘터리로 선정했다. IVCE 회장 트랜 댕은 “해외에 사는 젊은 베트남인들과 서양의 시청자들에게 현재 베트남 사회의 진짜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 작품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아가야, 미안해’는 베트남에 사는 건설노무자 통푸옥푹과 몇몇 자선가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병원에서 유산된 태아 시체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칸호아의 해안 지역 언덕의 작은 공동묘지에 그 태아들의 시체를 묻어주었다.

Facebook | Tống Phước Phúc Orphanage

이것은 정말 놀랍고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이다. 통푸옥푹은 무엇이 진짜 이타심인지를 세상에 보여주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아마도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될 것이다. ‘나는 얼마나 타인을 위하고 있는지?’

통푸옥푹은 버려진 아기들과 유산된 태아들의 진짜 영웅이다.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그의 이야기는 2001년 그의 아내가 임신했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았을 때, 많은 임산부들이 병원에 와서 유산을 하고 가버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Facebook | Tống Phước Phúc Orphanage

그 유산된 아기들은 세상에 나올 기회조차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심장은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유산된 아기 시체들을 모아 적당한 장소에 묻어 주어도 될지 병원에 물어보았다. 그는 유산된 아기들도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저축한 돈으로 나트랑 시의 혼톰이라고 불리는 산꼭대기에 땅을 샀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 불쌍한 아기들의 장례를 치러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의 아내는 그를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통은 포기하지 않았다. 몇년이 지나고 톰이 산 땅에 1만구 이상의 아기 시체가 묻혔다.

Facebook | Tống Phước Phúc Orphanage

통은 그가 만든 묘지가 더는 슬픔의 장소가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 동산은 아기를 유산하려고 생각하던 여자들을 감동하게 했다. 그는 임산부들이 더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하길 바랐다.

통은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는 여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많은 여성이 아이를 기를 경제적 수단이나 후원이 없어서 아기를 포기한다. 그래서 통은 그러한 임산부들을 돕기 시작했고, 많은 임산부가 통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결과 그의 집은 보육원처럼 됐다. 신생아를 통에게 맡긴 후 사정이 좋아져서 아기를 데려간 여자들도 많다.

Facebook | Tống Phước Phúc Orphanage

통은 죽은 아기의 장례를 치르기 전에 그 불행한 아기를 바라보며 먹먹한 마음이 되어 운다.

처음부터 통은 그저 자신이 원해서 이 일을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자기를 따르라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병원 사람들이 그의 좋은 뜻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더 많은 사람이 그의 일을 높이 평가하며 동참하기 시작했다.

통푸옥푹은 “많은 사산아의 장례를 치르다 보니 아기들을 살리는 게 더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의 산부인과로 갔다. 그리고 절망에 빠져 유산하려는 임산부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충고했다. 만약 아기를 키울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산모가 있으면, 그는 경제적인 능력을 갖출 때까지 자기가 키워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친모 외 누구에게도 아기를 주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Facebook | Tống Phước Phúc Orphanage

통은 수백 명의 아기를 나트랑에 있는 자신의 보육원으로 데려와서 돌봐주었다. 나트랑 시의 푸옹사이가(街) 56-3번지가 그의 집이다. 그곳에 20명의 어린아이를 데려왔다. 그리고 통은 나트랑 시에서 남쪽으로 70km 지점의 캄란에 두 번째 집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도 50명의 아기를 데려와서 캄란의 교회 사람들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통은 또한 나트랑 시에 약 1천 명 정도를 묻을 수 있는 8000m크기의 묘역을 만들고 있다.

그의 집으로 데려온 아기들은 모두 그의 성을 갖는다. 모든 어린이의 이름을 다 기억하는 게 어려우므로 그는 기억하기 쉬운 별명을 붙여준다. 예를 들어, 남자아이들은 명예를 의미하는 ‘빈’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은 마음을 의미하는 ‘탐’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그러나 중간 이름들은 다르다. 중간 이름은 친모의 고향 이름으로 한다. 이것은 그들이 집으로 쉽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통은 그 아이들을 남의 자식처럼 대하지 않는다. 그들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친자녀와 같다.

통은 아이가 친엄마와 다시 만나는 날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50명 이상이 친엄마에게로 돌아가서  살고 있다.

통은 현재 유산율이 현저하게 낮아져서 정말 기쁘다고 했다. “2004년에는 매일 약 30명의 사산아를 묻었죠. 하지만 이제 더는 그런 아기가 없어요.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Facebook | Tống Phước Phúc Orphanage

유산을 고민하며 통의 묘지를 찾아온 임산부가 여러 명 있었다. 그럴 때 통은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사랑스러운 아기들이 있었다. 통은 임산부들에게 엄마로서의 더 깊은 책임감을 느끼도록, 그리고 그들의 결정이 남은 생에 후회로 남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통은 비록 이 아이들을 키우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들지만,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빠’로서의 역할을 정말 사랑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친자녀들이 이 일을 이어가길 바란다.

통은 말했다. “저는 제가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할 겁니다. 그리고 내 아이들도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죽은 후에도요.”

얼마나 정 많은 영웅인가! 통푸옥푹 같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분명 더 좋아질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아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태아들의 살 권리는 누구도 빼앗으면 안 되며 그들도 살 권리가 있다.

NTD의 감동 스토리, 이제 YouTube에서도 만나보세요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