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열정과 땀으로 지은 예술 건축물 ‘꿈의 궁전’

By 조수연

프랑스 드롬주에 있는 한 작은 마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페르디낭 슈발(Ferdinand Cheval)은 13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제빵사 견습생이 됐다. 몇 년간의 견습생활을 마친 그는 우체부가 돼 환상적인 멋진 우연으로 오트리브에 배치됐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앙리 루소처럼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만든 질박한 예술 건축의 놀라운 사례로 간주한다. 페르디낭 슈발에 대해, 그리고 그의 애정과 노력으로 이뤄낸 ‘팔레 이데알’ 건축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1879년 4월, 43세의 페르디낭 슈발은 범상치 않은 모양의 돌에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는 돌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고, 다음 날 그 장소로 다시 갔을 때 훨씬 더 흥미로운 돌을 발견했다.

돌을 본 순간, 불현듯 영감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마치 일과처럼 29km에 이르는 길을 오가며 돌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가져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슈발은 바구니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다시 수레로 바꿔 돌을 나르기 시작했다.

그는 33년 동안 계속 돌을 모아 집으로 가져왔고, 밤이면 자신의 ‘팔레 이데알’을 지었다. 이웃의 비웃음과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석유램프로 불을 밝힌 채 팔레 이데알을 계속 지었다.

그는 처음 20년은 외벽을 세우고 외벽 조각을 하는 데 보냈는데 석회, 모르타르, 시멘트 등으로 돌을 고정했다.

Wikimedia Commons

팔레 이데알은 기독교와 힌두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에서 영감을 얻은 다양한 건축 스타일이 혼합돼 있다.

궁전은 문어, 카이만 악어, 코끼리, 곰, 새 등 거대한 동물과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이나 요정 같은 환상적인 존재로 장식된 것이 특징이다.

Wikimedia Commons
Wikimedia Commons
Wikimedia Commons

1894년에는 당시 15살이던 딸 알리스가 외벽에서 일하던 중 사망했다.

1896년, 60세가 되자 은퇴한 슈발은 석공의 도움으로 궁전 근처에 두 번째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이 건물을 ‘알리시우스 빌라’라고 명명하고 사망한 딸에게 헌정했다.

1912년까지 슈발은 아들 시빌을 잃는 등 모진 비극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궁전을 완성했다. 그리고 2년 후 그의 아내도 세상을 떠났다.

슈발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작가이며 초현실주의의 주창자인 앙드레 브러통,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 1932년 ‘우체부 슈발(Postman Cheval)’이라는 콜라주를 만든 독일 예술가 막스 에른스트, 미국 작가 아나이스 닌 등으로부터 그가 지은 건축물이 빛나는 개성을 가진 궁전임을 인정받았다.

Wikimedia Commons
Wikimedia Commons
Wikimedia Commons

슈발은 자신이 죽으면 팔레 이데알에 묻히기 바랐지만 허락받지 못했다.

그는 그후 8년간 오뜨리브 묘지에 자신을 위해 ‘침묵과 영원한 안식처’라는 이름의 묘를 만들어 1922년에 완성했다.

1924년 8월 19일,  88살에 생을 마감한 그는 자신이 만든 묘에 묻혔다.

페르디낭 슈발의 팔레 이데알은 1969년 문화부 장관인 앙드레 말로에 의해 문화 랜드마크로 선정됐다. 그의 무덤과 알리시우스 빌라 또한 역사적인 기념물로 등록돼 있다.

NTD의 감동 스토리, 이제 YouTube에서도 만나보세요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