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싸주신 ‘소고기 김밥’이 부끄러웠던 아들은 40년 뒤 눈물만 펑펑 흘렸다

By 김연진

새벽 1시, 아버지는 나와 동생에게 용돈을 주셨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내일은 꼭 둘이서 소고기 김밥을 사 먹어”

조금 의외였다. 시험 공부를 하던 나와 동생을 갑자기 방으로 불러 용돈을 건네신 아버지.

평소 시험기간에는 혹여나 공부에 방해가 될까 TV도 음소거 모드로 보시던 아버지였기에 더욱 그랬다.

술에 잔뜩 취하셨던 아버지는, 우리에게 용돈을 준 뒤 텅빈 지갑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 가만히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너희 할머니가 소고기 김밥의 원조야”

뜬금없이 이렇게 말씀하신 아버지는 눈을 꼭 감고, 당신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연합뉴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소풍을 떠났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소풍에서 친구들은 소시지가 들어간 김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친구들을 부럽게 바라봤다.

아버지는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워 도시락통을 꺼낼 수 없었다. 아버지의 김밥에는 소시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너희 할머니는 하루종일 밭일 하시느라 소시지를 구할 시간이 없었어. 시골에서 소시지 구하는 게 쉬운 일이겠니?”

그러면서 “너희 할머니는, 소시지 대신 소고기가 들어간 김밥을 싸주셨단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친구들의 소시지 김밥이 부러웠다. 소고기 김밥이 부끄러웠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연합뉴스

결국 아버지는 도시락통에 고개를 파묻고 허겁지겁 소고기 김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아버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소고기 김밥이 더 좋은 거지. 하지만 나는… 하루종일 일 하시고, 철없는 아들 김밥 싸주겠다고 그 시골에서 소고기를 구하러 다니셨을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4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라고 토로했다.

그 말씀을 끝으로 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지는 아들로서, 자신의 어머니가 정성껏 싸주셨던 소고기 김밥을 부끄러워했던 자신을 원망했다. 후회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 소고기 김밥은, 자신이 부끄러워했던 그 김밥은, 더이상 맛볼 수 없었다.

위 사연은 지난 24일 페이스북 페이지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 공개된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42864번째포효"내일은 꼭 둘이서 소고기 김밥을 사 먹어"오늘 새벽1시, 당장 내일 시험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와 동생에게 돈을 쥐어주시며 아빠가 말씀하셨다.딸들 시험기간이면 티비 소리도 음소거로…

Posted by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on Tuesday, April 23, 2019

작성자는 자신의 사연을 공개하면서 “살면서 아버지의 눈물을 두 번 봤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바로 오늘”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버지는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이 부끄러웠는지 눈물을 슥 닦으시고는 어서 방으로 가서 공부하라고 말씀하셨다”라며 “항상 강인하고 밝았던 아버지가 점점 약해지는 게 느껴져 속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세월이 지나고 아버지처럼 부모님께 죄송했던 일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아버지는 아마도 부모님께 대한 죄송함, 가슴 속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고 딸에게 용돈을 주신 것 같다고 작성자는 전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