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집 개로 태어난 아버지’

중국 송나라 시절, 강서 의풍현에 추생(鄒生)이란 청년이 있었다.

그의 집에는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아주 순하고 영리했다. 매번 주인이 외출했다 돌아올 때면 늘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맞았다.

어느 해 추생은 토지세를 내지 못해 감옥에 감금됐으며 10여 일 후 겨우 석방됐다.

추생이 집에 돌아오자 개는 매우 기뻐하면서 끊임없이 뛰어오르며 주인을 반가워 했다. 하지만 실수로 그만 추생의 옷을 발톱으로 찢어버렸다.

추생은 자신이 막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개에게 옷까지 찢기자 아주 불길하게 여겼다. 그는 아내와 논의했다.

“내가 막 출옥했는데 개가 이런 짓을 했으니 아주 재수가 없구려. 지금 요산사(遼山寺)에서 마침 절을 수리하고 있으니 내 생각에 그곳 일꾼들을 위로하는 좋은 일을 좀 했으면 하오. 이 개를 잡고 밀가루 다섯 말을 더해 함께 보냅시다.” 아내는 그의 의견에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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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추생은 어린 하인과 함께 개를 잡고 큰 상자에 개고기와 밀가루를 담아 절을 찾아갔다.

막 절 입구에 들어서려는 순간 절의 한 승려가 입구까지 나와 그를 맞이했다. 승려는 “상자는 여실 필요 없습니다. 개고기와 밀가루를 갖고 오셨죠?”

추생이 깜짝 놀라 승려에게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승려가 말했다.

“시주님께서 늘 우리 절에 물품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차마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오늘 일을 제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중요한 부탁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젯밤에 꿈속에서 당신의 부친을 뵈었는데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본래 삼계 중 천계(天界)로 환생할 수 있었는데 재물을 탐하고 집에 연연한 까닭에 우리 집안의 개로 환생했습니다. 때문에 평소 아들이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늘 뛰어나가 반갑게 맞이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실수로 아들의 옷을 찢자 아들이 저를 잡아 사찰 수리에 고생하는 일꾼들에게 주려고 합니다. 저는 이 때문에 축생도(畜生道)에서 벗어나 기쁘긴 하지만 만약 사지가 잘리고 삶아지는 고통을 피할 수 있다면 대사님의 은혜에 더욱 감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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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부탁은 제가 살아 있을 때 약간의 은전을 저축해놓은 것이 있는데 화로 밖 땅속에 묻어놓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훔쳐갈까 두려워 개로 환생해 늘 돈이 묻힌 땅 위에서 자면서 밤낮 지켜왔습니다. 대사님께 부탁드리니 제 아들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돈을 꺼내 일부는 저를 초도(超度)하는 불사(佛事)에 쓰고 나머지는 아들 부부가 생활하는데 쓰라고 말입니다.’

추생은 이 말을 듣고는 마음이 몹시 아팠다. 이에 그는 상자에 든 개의 시체를 꺼내 사찰 빈터에 고이 묻어주었다.

집에 돌아온 후 부친이 꿈에서 말한 곳을 파보니 과연 은전이 나왔다. 그는 부친의 당부에 따라 절을 찾아가 제사를 올리고 또 승려를 청해 경을 읽게 하여 부친의 혼령을 위로했다.

이 이야기는 송나라 때의 저명한 학자 홍매(洪邁)가 자신의 저서 ‘이견정지(夷堅丁志)’ 2권에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