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의 사인을 받은 7살 꼬마의 추억

By 이 충민

역대 최고의 ‘제임스 본드’로 꼽히는 영국 배우 로저 무어는 2017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한 트위터 사용자가 로저 무어와의 어린 시절 추억담을 전해 감동을 주고 있다.

이 이야기는 당시 7살 소년이었던 마크 헤인즈가 프랑스 니스 공항에서 루저 무어를 만난 일화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 * *

일등석 라운지도 없던 1983년, 7살이었던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니스 공항에 갔다가 게이트 근처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로저 무어를 봤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저기 제임스 본드가 있으니 가서 사인을 받아오자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제임스 본드나 로저 무어가 누군지 전혀 모르셨기에 할아버지는 날 데려가 그의 앞에 세워놓고 말씀하셨다. “내 손자가 말하길 당신이 유명한 사람이라더군요. 사인 좀 해주겠소?”

그는 유쾌하게 내 이름을 물으며 내 비행기 티켓 뒷편에 사인과 함께 기원하는 글을 남겨줬다. 나는 너무 기뻐하며 자리로 돌아갔는데, 와서 보니 사인 속 이름이 (알아보긴 힘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제임스 본드’는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보시더니 아마 ‘로저 무어’인 것 같다고 얘기해주셨다. 나는 로저 무어가 누군지 전혀 몰랐고 조금 맥이 빠졌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그가 다른 사람 이름으로 잘못 사인해 준 것 같다고 말씀드렸고, 할아버지는 사인된 티켓을 들고 다시 로저 무어에게 가셨다.

당시 로저 무어의 사인(트위터 캡처)

내가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사이, 할아버지가 그에게 가서 말씀하셨다. “아이가 당신이 이름을 잘못 쓴 것 같다고 합니다. 당신은 제임스 본드라고 하던데요.”

로저 무어는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은 후 나에게 오라고 손짓 했다. 내가 그의 무릎 근처로 갔을 때 그는 나에게 무릎을 구부리고, 좌우를 살핀 뒤 눈썹을 치켜 올리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로저 무어’라고 사인할 수 밖에 없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블로펠드(초기 007 시리즈의 메인 악역)가 알아낼 지도 모르거든.” 그리고선 ‘제임스 본드’를 봤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며, 비밀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기뻐서 신경이 곤두설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그가 ‘제임스 본드’라고 사인해 줬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아뇨, 제가 잘못 알았던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나 역시 제임스 본드와 함께 일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유니세프와 관련된 촬영에서 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마침 로어 무저가 대사 자격으로 촬영하러 왔고 그는 매우 사랑스러웠다. 카메라 세팅이 끝난 상태에서 나는 지나가는 길에 그에게 니스 공항에서 만났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행복하게 듣고선 큭큭 웃으며 말했다. “음, 기억은 안나지만 제임스 본드를 만났다니 정말 좋았겠네요.” 정말 기쁜 순간이었다.

그리고서 그는 멋지게 촬영을 마쳤다. 촬영 후 그는 차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복도에서 내 앞을 지나쳐 가게 됐다. 그런데 내 근처에 서더니 멈춰 서서는 좌우를 살핀 후 눈썹을 치켜 올리며 조용히 말했다.

“물론 우리가 니스에서 만난 걸 기억하고 있지. 하지만 저 안에선 카메라맨 때문에 말할 수 없었어. 누구든지 블로펠드를 위해 일할 수 있거든.”

서른 살이었던 나는 그날 7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기뻤다.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

영국 배우 로저 무어(AP=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