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공부를 시작해 10년 후 러시아 모스크바 항공공학과에서 과 수석으로 졸업한 한국인이 있다.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사는 공근식(52) 씨의 사연이 재조명됐다.
공씨는 47살의 나이로 러시아 모스크바 물리기술대학(MIPT) 항공공학과에서 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MIPT는 2010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러시아 최고의 명문대학이다.


수박농사를 짓던 농부가 10여 년 만에 어떻게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그는 공부를 싫어해 다니던 옥천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수박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함께 가정을 꾸려나가며 동생 2명을 뒷바라지했다.
수박농사를 지은 지 20년이 훌쩍 지나서야 문득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곧바로 이를 행동으로 옮겼고, 2004년 대전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성은야학교를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그의 인생을 바꾸게 해준 자원봉사자들을 만났다.
카이스트 물리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자원봉사자 5명이 그의 공부를 위해 시간과 장소 상관없이 수업을 해줬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려고 찾은 야학에서 공부에 재미를 붙였고, 자원봉사자들의 영향으로 이공계 영역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물리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 서른넷의 나이에 배재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또 다른 은사를 만났다.
이 대학 물리학과 박종대 교수는 그의 물리에 대한 이해력이 남다르다며 카이스트 수업 청강을 추천해줬고, 공씨는 카이스트에서 2년간 수업을 들으며 전문성을 키워갔다.
당시 배재대 교환교수로 와 있던 화학과 교수와 러시아 연구원의 추천으로 자연스레 러시아 유학을 결심하게 됐다.
운명처럼 당시 태풍 루사로 인해 그의 비닐하우스가 다 부서졌고, 이로 인해 가벼운 마음으로 배재대를 휴학하고 러시아로 떠났다고.
그렇게 2010년 41살의 나이에 MIPT 입학했지만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혔다.
러시아어가 너무 어려웠던 그는 중간고사 시험에 응시조차 할 수 없었고, 제적을 당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귀국 후 3개월 뒤, MIPT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다시 한번 유학을 권유했다.
그러나 학과는 항공공학과로 바꿔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러시아로 향했고, 이번에는 모든 강의 내용을 전체 녹음한 뒤 반복 청취하며 복습했다.

잠을 줄여가며 노력한 결과 47살에 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의 도전은 러시아 항공과학업계 격월간지 표지모델에 선정될 만큼 현지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그는 2018년, 49살의 나이에 러시아 정부 전액 장학생으로 같은 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주 연구분야는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극초음속 기술이다. 향후 한국에 돌아와 교수가 되는 게 그의 남은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