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물동이 나르다…” 필리핀에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역도 영웅

By 이서현

필리핀 ‘역도 영웅’ 하이딜린 디아스(30)가 역사상 처음으로 조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디아스는 지난 26일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55㎏급 A그룹 경기에서 인상 97㎏, 용상 127㎏으로 합계 224㎏을 들어 올리며 감격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용상 3차 시기, 127㎏을 번쩍 들어 금메달을 확정한 그는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AP 연합뉴스

필리핀이 1924년 올림픽에 참가한 이후 처음으로 금메달 따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디아스는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필리핀 여자 역도 선수 중 최초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이후 자신의 3번째 올림픽이었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필리핀 역도 사상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가 딴 은메달 역시 필리핀이 20년 만에 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이었다.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울먹이는 디아스 | AP 연합뉴스

그의 메달이 더 대단한 것은 제대로 된 지원도 없이 본인의 노력으로 일궈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디아스는 어린 시절부터 물 40ℓ를 지고 수백 미터를 걸어야 했을 만큼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역도를 시작한 것도 어떻게 하면 물동이를 가볍게 들고 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무거운 물을 더 효과적으로 들고자 했던 것이 역도 원리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영상 갈무리
영상 갈무리

가족을 위해 성공해야겠다는 다짐도 스스로를 다그치는 원동력이 됐다.

역도에 입문한 디아스는 콘크리트와 플라스틱 파이프로 만든 바벨로 운동을 시작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가난을 딛고 역도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한 그의 인생은 필리핀에서 단막극으로 제작됐다.

2012년에는 런던올림픽 선수단 기수를 맡기도 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역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년 전 필리핀 대통령이 그의 이름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며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훈련 중인 디아스 | AFP 연합뉴스

훈련 경비도 늘 부족해 대기업과 후원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지원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2월에는 중국인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말레이시아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체육관 출입을 할 수 없어 좁은 숙소에서 역기를 들어 올리며 연습했다.

훈련 중인 디아스 | AFP 연합뉴스

디아스는 경기 이후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믿을 수 없는 일, 꿈이 현실이 됐다”면서 “필리핀의 젊은 세대에게 ‘당신도 금메달을 꿈꿀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렇게 시작했고 마침내 해낼 수 있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필리핀 현지의 반응도 뜨겁다.

트위터에서는 디아스의 금메달 획득을 축하하는 트윗이 10만건 넘게 쏟아졌다.

또 정부와 기업들은 디아스에게 3,300만페소(약7억5,000만원)의 포상금과 집을 선물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