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탈북한 ‘국군포로’가 도움 요청하자 외면했던 한국 대사관(영상)

By 이서현

대한민국 군인으로 한국전쟁 당시 포로가 되어 45년 동안 북한에 강제 억류된 장영욱 씨.

그는 죽기 전 고향을 밟고 싶어 목숨을 걸고 탈북했다.

‘국군포로’라는 말 한마디면 한국에서 반겨줄 줄 알았다.

하지만, 주중 한국 대사관의 반응은 냉정하기만 했다.

지난 1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45년 만의 귀가 : 죽은 자의 생존 신고’ 10번째 이야기가 공개됐다.

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사연은 1998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철소 중장비 기사로 일하는 장영욱(47) 씨에게 의문의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처음 듣는 목소리의 중국 교포였다.

그는 도청위험이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고, 곧 장영욱 씨의 신상을 확인했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하며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전화기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당신 아버지를 데리고 있소.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면, 일주일 내로 중국으로 오시오.”

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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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동안 죽은 줄로 알았던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이어 한 남성이 전화를 넘겨받았고, 본인이 아버지라며 일주일 내로 자신을 꼭 구하러 와달라고 당부했다.

고민 끝에 장영욱 씨는 어머니와 함께 중국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두만강 국경마을의 한 허름한 주택을 찾았고, 그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 장무환 씨(당시 72세)를 만났다.

장무환 씨는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며 죽기 전 고향 땅을 밟고 싶어 탈북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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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기쁨도 잠시, 가족들의 마음은 급해졌다.

탈북자를 잡으려는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급히 기차를 타고 제3국의 한 도시로 이동했다.

한국에서 이미 사망자로 처리된 데다 탈북자인 그를 무사히 귀국시키자면 여권도 필요했다.

한국 대사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장무환 씨는 주중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대사관 직원과 장무환 씨의 대화 내용은 1998년 10월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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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환 씨 “나 국군포로 장무환인데 한국대사관 아닙니까?”

대사관 직원 “맞는데요.”

장무환 씨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지금 00에 지금 와 있는데 도와줄 수 없는가 이래서 묻습니다.”

대사관 직원 “하. 없죠”

무환 씨 “북한 사람인데, 내가.”

대사관 직원 “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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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 직원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통화 내내 긴장감으로 손을 떨던 장무환 씨는 듣는 이도 없는 수화기에 대고 “국군 포론데…”라고 읊조렸다.

이후 인터뷰를 하며 장무환 씨는 회한에 젖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조국에 가려 해도 정말 부끄럽다 말이야. 부끄러워. 전쟁에 나가서 공도 못 세우고 부상당해서 그냥 거꾸러져 버려서 참 부끄럽지.”

1998년 9월, 장무환 씨는 방송국의 도움으로 중국 대련발 대인호편으로 한국에 무사 귀환했다.

그해 말, 그는 소속되어 있던 부대에서 면역식을 치르고 45년간의 군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고향인 경북 울진군 매화면에서 농사를 짓다 2015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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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한국전쟁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장무환 씨는 5개월 된 아이와 아내를 두고 복무 중이었다.

1953년 7월 13일, 강원도 금화전투에서 중공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 휴전일을 며칠 앞두고 포로로 잡혀갔다.

이후 아오지 탄광에 끌려가 60세까지 노역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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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있던 장무환 씨는 1998년 탈북을 결심하고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 머물면서 국군 포로의 탈북과 귀환 과정을 담으려던 SBS 방송사와 연락이 닿았다.

그해 문제가 된 대사관 직원과 장무환 씨의 통화 내용이 전파를 탔지만, 당시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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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특집 방송을 통해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본국으로 돌아오겠다는 군인을 냉대한 대사관 측에 비난이 쏟아졌다.

파문이 커지자 외교부에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또 해당 직원은 한국에서 파견된 업무보조원으로 첫 방송이 나간 후 8년이 지난 2006년에서야 퇴직했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