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납치범이 떨어트린 ‘폭탄’ 몸으로 막아 승객 살린 여객기 조종사

By 이서현

테러범에 대항해 승객의 목숨을 지킨 한 여객기 조종사의 사연이 재조명됐다.

지난 4월 방송된 tvN ‘알쓸범잡’에서는 윤종신과 박지선, 정재민, 김상욱, 장항준이 제주에서 조우한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은 제주도의 관광이 급부상하게 된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작됐다.

김상욱은 “비행기가 생긴 다음인 것 같다”며 추측했고 이후 출연자들은 비행기 내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 언급했다.

tvN ‘알쓸범잡’

장항준은 비행기 범죄 중 가장 강력한 것은 하이재킹(비행기 공중 납치)이라며 “70년대 절정이었다. 68년부터 14년간 전 세계에서 684건의 하이재킹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계산을 해보면 1주일에 1번꼴로 비행기가 납치당하던 시절이었던 것.

그는 이어서 “하이재킹이 외국의 일이라고 대부분 생각하는데 한국에서도 사건이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해당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tvN ‘알쓸범잡’

1969년, 승객과 승무원 51명을 태운 대한항공 여객기 한 대가 강릉에서 김포로 향하던 중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됐다.

심한 고문을 받고서 39명의 승객은 돌아왔고, 기장과 부기장, 승무원과 승객 7명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항공사는 무장한 경찰관이 승무원으로 위장해 탑승하는 보안승무원 제도를 도입했다.

tvN ‘알쓸범잡’

13개월이 지난 71년 1월, 대한항공 여객기가 속초공항을 이륙해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이 비행기에는 55명의 승객과 기장, 부기장, 수습 조종사 그리고 보안승무원이 탑승했다.

당시 기장의 회고안에 따르면 이륙 후 20분이 지난후 기내에 큰 폭음이 들렸다.

그 충격으로 조종실 문이 부서지고 선체에도 20~30cm의 구멍이 났다.

기장은 테러를 직감하고 침착하게 관제소에 납치 상황과 비행기의 위치를 알렸다.

tvN ‘알쓸범잡’

곧 폭탄 두 개를 든 납치범 김상태가 조종실로 들어와 기수를 북으로 돌리라고 위협했다.

김상태는 강원도 고성에서 부모와 살며 별다른 직업이 없던 22살 청년이었다.

광산에 다니던 친구에게 폭탄 제조 방법을 익혔고 사제 폭탄 네 개를 들고 비행기에 탑승했다고 한다.

기장은 김상태의 요구대로 하는 척하며 비상 착륙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곧 휴전선에서 불과 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화진포 상공에 이르렀다.

기장은 더는 결심을 미룰 수 없었고, 비행기가 북한 영공으로 넘어왔다고 속이며 강하를 시작했다.

tvN ‘알쓸범잡’

하지만, 김상태는 강원도 고성에서 나고 자란 김상태는 해변의 지형으로 이곳이 화진포임을 곧바로 알아챘다.

폭탄을 던져버리겠다는 김상태의 협박에 기장은 다시 고도를 올려 북으로 향했다.

그때 기장의 통보를 감청한 공군이 F-5 전투기 두 대를 출격시켰다.

전투기는 비행기가 북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좌우로 에워쌌다.

tvN ‘알쓸범잡’
tvN ‘알쓸범잡’

김상태가 “저 비행기는 뭐냐”라며 의심하자 기장은 기지를 발휘에 북한 측의 소련제 미그기라고 속였다.

F-5 전투기를 본 적이 없는 김상태는 기장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보안승무원과 사인을 주고받은 객실승무원도 김상태를 속이기 위해 거짓 기내 방송을 했다.

tvN ‘알쓸범잡’

“이 비행기는 지금 북한 영공으로 들어왔습니다. 북한에 착륙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가지고 있는 신분증을 지금 모두 찢어버리십시오.”

이후, 승무원은 객실을 돌아다니며 승객들에게 통곡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권총을 소지한 보안승무원은 승객들을 위로하는 척하며 조종실에 있는 김상태에게 접근했다.

김상태가 창문으로 직접 확인하려고 시선을 돌리는 순간, 보안승무원은 권총을 뽑아 김상태를 향해 발사했다.

동시에 조종석 뒷자리에 있던 수습 부기장인 전명세 씨가 김상태를 저격했고, 머리에 총알을 맞은 김상태는 그 자리에서 사살됐다.

문제는 김상태가 손에 들고 있던 폭탄을 조종실 바닥에 떨어뜨린 것.

만약 폭탄이 터지게 된다면 조종사와 비행 시스템이 일시에 무력화돼 비행기는 그대로 추락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tvN ‘알쓸범잡’
tvN ‘알쓸범잡’

전명세 부기장은 바로 몸을 날려 폭탄을 품에 끌어안았다. 폭탄은 그의 하복부와 어깨 밑에서 폭발했다.

폭탄 파편이 튀며 기장도 안면에 중상을 입었지만 조종 시스템은 손상을 입지 않았다.

비행기는 이륙 1시간 11분 만에 고성군 초도리 바닷가에 비상착륙을 했다.

치명상을 입은 전명세 부기장은 응급 치료를 받고 서울로 이송되는 도중 구급차 안에서 사망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안타까운 의인의 죽음이었다. 그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