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줄 서야 구할 수 있다는 ‘다이어트약’의 실체

By 이서현

지난 2019년 4월 12일 새벽 서울의 학동역 부근.

한 남성이 허공에 주먹을 날리고 길 위에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CCTV 화면에 포착됐다.

그의 이상한 행동은 달리는 차에 갑자기 뛰어들고서야 멈췄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마약 투약과 같은 불법 행위를 의심했고, 남성은 곧장 현행범으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그는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이후 이 사건은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CCTV 영상의 주인공이 바로 영화 ‘바람’에서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하며, 왕성한 활동을 해오던 배우 양기원 씨였기 때문이다.

얼굴이 알려진 배우가 공공장소에서 왜 이렇게 기묘한 행동을 한 걸까.

지난 2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식욕억제제의 부작용과 오남용 실태를 추적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그의 행동을 보고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제보자를 만났다

3년 전 그는 ‘부를 재분배하라’라는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며 쓰지도 않는 물건을 흥청망청 샀다가 다음 날 버리곤 했다.

또 죽은 고양이 사체를 붙들고 부활할 것을 기다리고 어머니의 몸에 불을 붙이려 했던 그는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후 지금까지도 치료를 받고 있다.

비슷한 시기 의정부에서는 아파트 9층에서 불이 나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방화범은 불이 난 집에 살던 딸 천 씨(가명)였다. 가족들과 말다툼을 벌이던 중 실제로 라이터를 꺼내 들고 불을 붙였지만 이전까지는 문제없이 평범했던 딸이었다고 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이 세 사람에게는 체중 조절을 위해 어떤 알약을 먹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다이어트에 효과가 좋다고 소문난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인 일명 ‘나비약’이었다.

제작진은 ‘나비약’과 이상행동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 이 약의 복용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지인이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약을 처방받았다고 했다.

실제로 식욕억제의 효과가 컸다고 밝혔지만 다수가 우울과 환청, 환각 등 부작용을 겪었다고 답했다.

또한 복용을 중지하면 폭식증이 생기거나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등 또 다른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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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이렇게 부작용이 심한 데다 병원에서 처방받아야만 구할 수 있는 이 약이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명 ‘뼈말라’ 몸무게를 원하는 10대들이 극단적인 다이어트에도 살이 빠지지 않을 때 이 ‘나비약’을 다량으로 복용하는 방법을 택한다고 한다.

제작진은 비만 클리닉으로 유명한 의원 3곳에서 처방하는 약도 살펴봤다.

두 곳은 비만치료의원이었고 한 곳은 정신과였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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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앞에는 약을 타려는 사람들이 새벽 2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

머리가 빠질 정도로 약이 독하다는 걸 알지만 식욕억제 효과가 좋아서 찾게 된다고 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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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이들이 들어오면 간단한 설명 후 바로 10~12가지 종류의 약을 처방했다.

향정신성 신경안정제와 식욕억제제를 비롯해 비염약, 유산균, 이뇨제, 설사제, 항우울제, 간 건강기능식품, 지방흡수 억제제 등이었다.

 

이를 본 전문가들은 부작용을 우려했다.

캘리포니아 한인약사회 회장인 유창호 약사는 “한국말로 하면 투망식 투여라고 해야 하나. 이런저런 약을 한꺼번에 던져 보면 한 마리는 잡히겠지라는 그런 발상에서 이뇨제, 설사제, 신경안정제 다이어트약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처방해서 살이 일단 빠질 수가 있다. 그러나 장기간 복용으로 오는 부작용을 간과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김미애 의원은 “환자 본인도 식욕억제제는 마약류라는 인식이 있어야 되고 의사도 오남용의 위성을 경고하고 식약처나 보건복지부도 관리 감독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정말 저런 약 처방하는 의사들도 너무한다” “약 끊으면 요요가 더 심하게 오던데” “살찐 사람에 대한 혐오가 너무 심해서 그런 듯” “의지만으로 살 빼는 것도 진짜 힘들긴 함” “살은 다른 방법으로 뺄 수 있는데 약물로 온 우울증은 평생 가더라” 등의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