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회사 일만 알고 잘못했던 것을 사과하고, 미안하다. 그렇지만 너 간 다음에 많은 아이들을 구했으니 이제 네가 날 보고 웃어줬으면 좋겠다.”
청소년 폭력 예방 재단인 푸른나무재단 김종기 명예 이사장이 살아있다면 44살이 되었을 아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지난 6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그날’ 특집으로 꾸며졌다.
학교폭력으로 아들을 잃은 김종기 이사장은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그날’에 대해 전했다.
그는 재단을 세우기 전 S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하다가 S전자 홍콩 법인장을 지냈다.

20년 넘게 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갑자기 재단을 세우게 된 사연은 27년 전, 아들의 예고 없는 죽음에서 시작됐다.
고등학생 아들은 학급에서 반장도 하고 팬클럽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 종종 몸에 상처를 달고 왔고, 안경이 부러져서 들어오기도 했다.
아들은 상급생에게 불려 다니며 학교폭력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1995년 6월 어느 날 아침, 그가 중국 베이징 출장을 가던 날이었다.
의기소침한 아들을 본 그는 ‘임마, 사내자식이 어깨 좀 펴고 다녀’라며 가볍게 얘기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틀 뒤, 아들은 5층 아파트에서 두 번이나 몸을 던졌다.
처음 차 위에 떨어져서 살았는데, 다시 걸어 올라갔다고 했다.


그는 “(당시) 어쩐지 밤에 잠이 안 왔다. 새벽에 감이 이상해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한참 침묵하다가 폭포수처럼 ‘여보 대현이가 죽었어’라며 엄청 울었다. 땅이 꺼지고 호텔이 폭파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왜 몸을 두 번이나 던져서 어린 나이에 삶을 마감했는지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너무 원통하고 (스스로가) 한심했다. 아들을 돌보지 못하고 회사 일에만 몰두했다는 죄책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죽기 전 신변을 다 정리했더라”라며 아픈 기억을 다시금 꺼냈다.
사고 이후, 가해자들이 보인 행동은 충격적이었다.
이들은 술에 취한 채 영안실에서 행패를 부렸고, “에이씨, 얘 죽어서 괜히 나만 X됐어”라고 투덜거렸다.

그날로 그는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가해자들이 아들의 친구들까지 엄청나게 폭행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내가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얘들을 없애버리고 한국을 뜨겠다고 생각했다”라며 “한 명씩 빵집에서 만나 왜 그랬냐고 했다. 걔들이 벌벌 떨더라.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복수를 하려 했지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털어놨다.
이어 “제2의 대현이(아들)가 없도록 해야겠다고 방향을 선회했다”라며 재단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이후, 김종기 이사장은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면에 나섰다.
사람들을 모아 현재의 푸른나무재단의 전신인 시민 모임을 만들고 결국엔 ‘청소년 폭력예방재단’이라는 법인을 세웠다.
또 그가 교육부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노력한 끝에 2004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마련될 수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아 2019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인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