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4-09-15 03:20 AM]
[자오페이]
마오쩌둥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의 `계란 볶음밥`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겁니다. 한국전쟁 당시 마오쩌둥은 태자인 마오안잉을 키워 권력을 물려주기 위해 펑더화이(彭德怀)의 지원군 사령부에 번역관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마오안잉이 야전수칙을 위반하고 불을 피워 계란 볶음밥을 만들다 미국 항공기에 폭격 맞아 죽을 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요?
2014년 9월 9월, 마오쩌둥 기일에는 또 한 그릇의 볶음밥이라 할 수 있는 마오안훙(毛岸红) 이야기가 떠들썩하게 등장했습니다. 애도 화환 위에 마오쩌둥의 딸 리민(李敏) 사진 외에도 마오안훙이라는 남자의 사진도 나타났습니다. 이 마오안훙은 허즈전(贺子珍, 마오쩌둥의 셋째 부인)이 낳았는데요, 마오쩌둥이 홍군을 몰고 북쪽으로 도망갈 때 그를 다른 사람에게 입양시켰습니다.
1954년, 허즈전이 장시(江西)에 의뢰해 `주다오라이(朱道来)`로 이름을 고친 아이를 찾았고, 마오쩌둥도 그가 자기 형제처럼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난징(南京)의 주웨첸(朱月倩)이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해 결국 다툼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중공은 논란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를 베이징에 데려와 길렀습니다.
올해 마오쩌둥 기일에 주다오라이가 면목을 드러낸 것은 그가 결국 마오 집안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이쯤에서 어쩔 수 없이 마오안훙의 죽음을 말해야겠습니다. 주다오라이는 1971년 난징에서 간암으로 죽었습니다. 마오쩌둥이 1976년에 죽었으니 주다오라이의 죽음은 태자에게 권력을 물려주려 했던 마오쩌둥에게 또 한 그릇의 계란 볶음밥이었습니다.
이 아득한 하늘의 뜻은 중국을 북쪽의 북한과 같은 비참한 상황에 빠지지 않게 했습니다. 하늘의 배치는 아주 치밀해서, 먼저 이 안훙 황자가 살아 있었을 때는 생가에 돌아갈 수 없었고, 이어서 안잉 태자가 계란 볶음밥 때문에 죽자 결국 안훙 황자도 마오쩌둥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중공이 중국을 65년이나 강제 점령한 동안 많은 사람들은 이미 중공의 폭정이 몸에 배었습니다. 심지어 올해 10월 1일 국상일(国殇日, 원래는 중공 정권수립 기념일이나, 많은 국민이 국상일로 부름, 순국열사일의 의미)에는 중공을 위해 찬양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분들께 중공이 망하는 것은 하늘의 뜻이므로 절대 스스로 `하늘의 노여움`을 사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마이크로 뉴스]
북한으로 망명한 미국인, 오바마에게 도움을 간청
[자오페이]
많은 사람이 공산국가에서 탈출할 때 이 물결을 거슬러 움직이는 사람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2014년 9월 14일, 북한은 미국인 메튜 밀러에게 노동교화형 6년을 선고했습니다. 밀러는 북한에 어떻게 들어갔을까요? 밀러는 올해 4월 북한 세관에서 비자를 찢으며 “나는 정치피난을 신청한다”. “나는 피난을 위해 북한에 왔다”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반조선 적대행위” 죄로 북한에 억류됐습니다.
밀러가 8월 미국 정부에 자신을 구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아쉽게도 너무 늦었습니다. 민주국가인 미국은 여전히 마지막 노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현재 서방에서도 한 무리 좌파들이 공산정권을 추켜세우는데, 목적은 바로 공산정권으로부터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공자학원을 대신 선전해 주면서 중공으로부터 무슨 이익이 주어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공자학원은 무엇을 가르칠까요? 네티즌은 말합니다. “한 무리 외국인이 ‘나는 베이징 천안문을 사랑한다.’는 노래를 부른다.” 이런 외국인은 결국 밀러처럼 하수구 기름을 유채기름이라고 말합니다. 이건 암수에 걸린 것입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중공을 위해 찬가를 부르는 것은 바로 더욱 많은 밀러식 비극을 만드는 행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