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을 제치고 총서기가 될 뻔한 중공 원로, 다시 꼬리를 밟다(한,중)

 

 [www.ntdtv.co.kr  2014-11-26 03:20 PM]​​

  

 

[자오페이]

중공 전 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 톈지윈(田纪云)이 지난 10월, 작고한 아내를 추모하는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이 11월 25일 중국 각 언론에 전재되었습니다. 톈지윈은 장쩌민과 총서기직을 다투던 후보 중 한 사람이고, 과거 중앙당교(中央黨校, 중국공산당의 고급 간부 양성기관)에서 자신의 경선 선언문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장쩌민은 보수파 원로들의 지지 하에 덩샤오핑의 경제개혁에 대해 정비를 단행했는데 목적은 덩샤오핑 때리기였습니다. 1992년 4개혁파의 차오스(乔石)는 당시 부총리 톈지윈을 초청해 중앙당교에서 성급(省级) 관리들에게 보고하게 했습니다중공 당내는 이 보고를 총서기직 경선에 나서는 톈지윈의 선언문으로 간주했습니다.

 

당시 보고내용은 장쩌민의 보수정책에 맞서 개혁을 적극 지지하는 것이었고, 덩샤오핑의 뜻과 일치했습니다어떤 사람이 덩샤오핑에게 이를 보여주자, 덩샤오핑은 문제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 내용 중에 어떤 사람은 `사람을 보면 사람말을 하고 귀신을 보면 귀신말을 한다`고 표현한 부분입니다이 말은 장쩌민을 기회주의자로 비난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덩샤오핑은 원래 1992년 14대에서 장쩌민을 톈지윈으로 바꾸려 했습니다결국, 성공하지 못했는데 주로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첫 번째는보수세력이 밀리는 것을 본 기회주의자 장쩌민이 즉시 덩샤오핑의 개혁에 아첨했기 때문입니다두 번째는 톈지윈과 자오즈양의 관계가 지나치게 좋았고, 6·4 사태의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톈지윈의 발언에 덩샤오핑이 불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톈지윈이 아내에게 쓴 추모사에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네 명의 아이가 모두 자신의 힘으로 근면하게 일해서 생활합니다.” 나와 아내는 지금까지 권력과 영향력을 이용해 자녀에게 도움을 준 적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장쩌민의 아픈 곳을 찌른 셈이 되었습니다. 장쩌민의 가족이 어떤 상황인지 여러분은 다 알 것입니다장쩌민의 큰아들 장몐헝(江绵恒)중국 제일의 탐관이고, 손자 장즈청(江志成)의 투자회사는 알리바바에 투자했습니다장쩌민은 톈지윈이 말한 것과 정반대입니다. 권력을 이용해 자녀에게 도움을 주었으니 톈지윈의 말은 장쩌민의 약점을 찌른 셈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어 살펴보면, 여러분은 중공 관리들이 모두 공적으로는 틀에 박힌 말을 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인간적인 면이 있는 현상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웨이보에 4인방 중 한 사람인 왕훙원(王洪文)의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왕훙원이 1976년 부인에게 이혼을 요구했는데 그 소식을 들은 부인은 “좋아요. 제가 그 사람의 길을 막을 수는 없어요. 그 사람은 자기 벼슬을 하고, 저는 서민이 되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이튿날 왕훙원이 체포됐다는 소식이 발표됐습니다이 부인은 이혼을 하지 않고 오히려 해마다 딸을 데리고 왕훙원을 만나러 감옥을 찾았습니다.

 

사실왕훙원이 아내에게 이혼을 통지할 때는 이미 체포된 뒤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비판투쟁에 나서게 한 중공 당원인 그가 직위에서 물러난 후 뜻밖에 인성(人性)을 내보였습니다이런 현상은 바로 `9평 공산당`에서 말한 당성(党性)과 인성의 문제입니다중공 당원으로 무대 위에 있을 때는 당성이 인성을 압도하는데, 중공의 운영 논리에 따라 어떤 나쁜 일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사적으로만 인간적인 면을 나타낼 수 있는데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나는 중공 당원에게 제발 좀 빨리 탈당하라고 권합니다우리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늘 사람답게 사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