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페이]
지난주 국제사회를 놀라게 한 톈진(天津)항 대폭발로 백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충격적이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이런 재난상황에서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은 전국민 캠페인을 벌이곤 했습니다.
이런 캠페인은 보통 3단계로 진행됩니다. 1단계, 구조대가 죽음을 불사하고 재난지역에서 구조활동을 벌이며, 지도자는 이들을 격려합니다. 2단계, 이재민을 위해 모금과 물품후원 활동을 벌이며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3단계, 구조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국민적 영웅으로 발굴해 추앙하며 감동과 눈물을 자아냅니다.
이런 3부작은 중공의 재난초기 대응과정에서 어김없이 반복 상영되는데요. 고질적인 병폐들도 늘 똑같습니다.
첫째, 구조대원들의 용기는 가상하지만 지휘체계가 엉망입니다. 2008년 중국 남부의 쓰촨(四川)성에서 발생한 원촨(汶川)지진 때는 북부지방인 산둥(山東)성 병사들까지 달려와 구조작업을 도왔지만 기초적인 장비조차 없이 맨손으로 벽돌과 기와장을 파냈습니다. 1998년 양쯔강 홍수 때는 당시 장쩌민 공산당 총서기가 병사들에게 맨몸으로 물살을 막아내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번 톈진항 대폭발에서는 18,9세 된 신병들이 물통과 삽을 들고 유독성 화학물질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최초에 투입된 병사들은 생존자가 몇 명 안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둘째, 기부받은 성금과 물품은 어떻게 될까요? 이를 관리하는 적십자사가 어떤 기관인지는 궈메이메이(郭美美)가 전국민에게 알려줬습니다. 궈메이메이는 적십자사의 한 간부의 첩으로 살며, 사치스런 선물을 받아 논란을 일으키다가 현재 불법도박 혐의로 복역 중입니다. 쓰촨성 지방정부 간부들은 2008년 원촨지진 성금을 착복해 고급승용차 구입하는 등 개인적 용도에 사용했습니다.
셋째, CCTV와 인민일보는 국민감정을 억지스럽게 감사와 행복으로 몰고갑니다만, 책임자 추궁은? 없습니다. 원촨지진의 피해를 키운 부실시공은 6년이 지났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설사,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이 책임자를 추궁하더라도 소수 희생자에게 덮어씌우고 자신은 여전히 광명정대한 당으로 남을 겁니다. 산둥 작가협회 부회장은 원촨지진 후 “귀신이 되어도 행복하다”는 시를 썼습니다. 파렴치한 일입니다.
재난상황에서 중공은 구조대원의 죽음을 영웅적인 일로 떠받들며 숭배하도록 했습니다. 이들의 희생이 과연 필요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왜 중공은 60년 집권기간에 제대로 된 구조 시스템 없이, ‘병사들의 맨몸으로 적의 총탄을 막는’ 방식이었을까요?
이는 중공의 ‘죽음 숭배’에 기인합니다. 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고생도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중공의 구호가 죽음 숭배를 드러냅니다. 이런 가치관으로 중공은 사람들을 실제적 죽음으로 몰고갑니다. 중국인들이 영웅으로 추앙하는 인물들, 총구를 맨몸으로 막아섰던 황쥐관(黄继光), 자폭으로 적의 기지를 파괴했던 둥춘루이(董存瑞), 마오쩌둥이 “영광스럽게 살고 위대하게 죽었다”고 떠받든 류후란(刘胡兰) 등은 모두 죽음에 몸을 내던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상하이의 지식인이었던 청년 진쉰화(金训华)는 나무 두 그루를 지켜내려다 익사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위대한 인물들은 위대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위대하게 살았습니다. 남송시대의 명장 악비(岳飞)장군은 충효의 화신이자, 용맹스럽게 살았으며 간신의 모함으로 비장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중국인은 아직도 악비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간신 진회(秦桧)를 미워합니다.
중공은 중국인을 세뇌해,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영웅스러운 일이라며 죽음을 숭배하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사상에 물든 톈진 소방대의 청년들은 유독성 화학물질이 가득한 폭발현장에 맨몸으로 돌진했습니다. 현실은 엄숙한 것입니다. 중공의 거짓말에 속았다 해서 죽음이 비켜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원촨지진을 계기로 재난상황에서 죽음을 숭배하는 사회 분위기도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부실공사를 한 업체와 이들을 관리해야 할 당국으로 시선을 돌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톈진항 폭발사고에서는 기자회견 때 관할당국에 유독성 물질을 보관한 창고가 거주지역에 가까이 세워진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이 나왔습니다.
죽음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며 두려운 일입니다. 희생된 소방대원과 유가족에 대한 슬픔은 당연한 것이지만, 중공이 선전하는 ‘영광과 감동’과는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