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 청년, 4명 살리고 하늘나라로… 버킷리스트에 ‘장기 기증’

By 연유선

일터에서 추락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20대 청년이 ‘버킷리스트'(꼭 해보고 싶은 일)에 있던 장기기증으로 4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달 13일 제주시의 제주한라병원에서 구경호(28)씨가 뇌사장기기증으로 심장, 간장, 신장(양쪽)을 기증해 4명의 생명을 살렸다고 25일 밝혔다.

앞서 경호씨는 지난달 7일 공사장에서 작업 도중 추락 사고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상태에 빠졌다.

한순간의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아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어머니 강현숙 씨는 ‘장기 기증’을 떠올렸다. 긴 고민 끝에 구 씨의 가족들은 결국 장기 기증으로 아들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기로 결심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2023년 8월 13일, 그렇게 구 씨는 4명에게 심장과 간장, 신장(좌·우)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구 씨가 떠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가족들은 구 씨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100가지 버킷리스트(죽기 전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목록)’가 적힌 종이를 발견했다.

버킷리스트에는 ‘돈을 많이 벌어 한 달에 100만 원씩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장기 기증을 하겠다’라는 소망이 담겨 있었다.

‘과연 장기 기증이 아들을 위한 선택일지’ 마음이 편치 않았던 구 씨의 부모는 그제야 미안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경호씨의 어머니는 “어차피 한 줌의 재로 남을 아들이라면 장기 기증으로 세상 어느 곳에서든 살아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라고 KBS에 전했다.

제주도에서 2남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경호씨는 밝고 긍정적이었다. 그의 꿈은 언젠가 자신의 사업체를 차리는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평일에는 건설업 일을 하며 착실히 저축하고 주말에는 어머니의 김밥집 일을 도왔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네가 떠나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슬플 것 같아 기증을 결심했어. 나도 너와 같이 기증할 거라고 웃으면서 약속했어. 속 한번 안 썩이고 착하게만 자라 온 네가 고생만 하고 떠난 것 같아 미안해. 사랑하고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지내”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