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할로윈 장난감에서 발견된 무서운 편지

By 이 충민

지난달 29일 영국 BBC는 미국인 줄리 케이스가 경험한 영화같은 일을 전했다.

줄리는 어느 날 다락방에서 할로윈 묘지 장난감 세트를 꺼냈다. 슈퍼마켓에서 29.99달러(약 3만4천원)에 구매한 이 세트는 딸의 5번째 생일을 할로윈처럼 치르기 위해서였다.

줄리가 상자를 열자 종이 뭉치 하나가 떨어졌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당신이 어쩌다 이 제품을 구매했다면, 제발 이 편지를 국제인권단체에 보내주세요. 수천 명의 사람이 여기서 중국 공안에 의해 고문, 구타 등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감사하고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편지에는 장난감이 중국 선양시 마싼자 노동 수용소에서 생산됐고, 노동자들은 하루에 15시간, 주 7일 동안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중 파룬궁 수련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한 대우를 받고 있어요.”

편지에 서명도 없었고, 발신자의 신분을 알 수 없었다.

BBC=FLYING CLOUD PRODUCTIONS

줄리는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편지 주인의 절박함이 느껴졌고 제품에 편지를 숨기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짐작이 갔다.

줄리는 우선 조언을 받기 위해 페이스북에 편지사진과 내용을 올렸다. 그리고 국제인권단체에 연락해보라는 친구들의 조언에 몇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처음에는 별다른 답을 얻지 못했다.

줄리와 편지의 사연은 노력 끝에 지역 신문 오레고니언지 1면에 실렸고, 이후 전 세계 방송사와 신문사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줄리 케이스(BBC=FLYING CLOUD PRODUCTIONS)

편지를 보낸 사람은 쑨이(孫毅)라는 중국 석유가스 회사 엔지니어이자 파룬궁 수련자였다. 그는 새벽 4시부터 밤 11시, 혹은 자정까지 식사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노동을 강요받았다.

파룬궁은 90년대 초부터 중국에서 전해진 ‘진실(眞) ·선량(善) ·인내(忍)’를 기준으로 몸과 마음을 닦는 중국 전통 기공 수련법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당국은 애초 의료비 절감 목적으로 파룬궁을 적극 권장했다. 하지만 점차 규모가 커지자, 공산당 독재정권의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1999년부터 박해하기 시작했다.

쑨이 역시 베이징 올림픽 개최 직전인 2008년 2월 파룬궁 수련 도중 체포됐고, 2년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바로 반체제 인사들과 정치범이 수용되는 ‘중국의 수용소’ 마싼자 노동수용소에 수감됐고 그는 곧 아내로부터 이혼을 요구하는 편지를 받았다.

그는 아내의 이혼 요구를 받은 후 수용소 내에서 제작되는 해외 수출품 안에 편지를 숨겨 마싼자 수용소의 실태를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언론에 소개된 마싼자수용소에서의 고문과 구타 이미지들(FLYING CLOUD PRODUCTIONS)

그는 모두가 잠든 밤 조용히 종이를 꺼내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적어나갔다.

벽 반대편에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한 밤이었기에, 신중하고 조용히 일을 진행했다.

쑨이는 마싼자에 있는 동안 20통의 편지를 썼다. 매번 편지를 숨길 때마다 어떤 제품이 검문당할지 몰랐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였다.

보통은 다른 수감자들이 밖에서 쉬고 있는 휴식 시간에 일을 처리했고 이후 편지를 수용소 내 다른 파룬궁 수련자들과 함께 넣기 시작했다.

BBC=EL TORO STUDIOS

하지만 어느 날 밤, 교도관에게 편지 하나가 발각됐고, 편지를 들킨 파룬궁 수련자는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쑨이는 다행히 들키지 않고 처벌을 피했지만, 파룬궁 수감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단속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간수들은 그의 손목을 이층 침대에 수갑으로 하루 종일 채우고 파룬궁에 대한 신념을 버릴 것을 강요하며 고문했다.

수용소에서 극심한 고생을 겪던 그는 2010년 9월 마침내 석방됐다.

이후 중국에서 파룬궁을 남몰래 수련하고, 문학 작품을 인쇄하며 조용히 지내던 그는 2012년 인터넷 검열을 피해 외국 웹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우연히 할로윈 장식품 속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그는 깜짝 놀랐다. 바로 자신이 보낸 편지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쑨이의 편지로 인해 CNN에 보도된 중국 강제노동 수용소의 실태(FLYING CLOUD PRODUCTIONS)

한편 줄리의 할로윈 세트 속 편지 이야기는 전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그녀가 편지를 발견한 지 4개월 만에 중국의 한 잡지에도 마싼자의 상황이 보도됐다.

온라인 기사는 삭제됐지만, 여론의 압박을 느낀 중국 정부는 ‘강제 노동’ 제도를 없애고 16만 명의 수감자를 석방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중국의 강제 노동제도는 완전히 철폐됐는데 이는 모두 쑨이와 줄리 덕분이었다.

폐쇄된 마싼자 수용소(FLYING CLOUD PRODUCTIONS)

쑨이는 이후 또 다른 편지를 썼다. 이번에는 줄리에게 직접 쓴 편지였다. 줄리는 편지를 받고 기뻤다고 말했다.

“너무 기뻤어요. 그가 살아서 저를 자랑스러워한다는 것도, 제가 옳은 일을 했다는 것도 알았으니까요.”

이후 쑨이는 뉴욕타임스뿐만 아니라 중국의 인권 박해를 취재하던 캐나다인 영화 감독 레온 리와 접촉하며 자신의 영상을 공유했다.

석방 후 마싼자 수용소를 찾은 쑨이(BBC=FLYING CLOUD PRODUCTIONS)

하지만 이는 중국에서 엄청난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이었다. 그는 이혼한 아내와 다시 재결합해 함께 중국을 떠날 계획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체포됐다가 건강 문제로 인해 풀려났다.

그리고는 레온 감독의 도움을 받아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로 도피했다.

힘든 나날들이었다. 난민 지위 신청을 했으나, 비호 신청자 신분으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또 아내의 신변이 걱정돼 가족들에게도 연락하지 못했다.

그는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를 익히며 모아둔 돈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고, 줄리가 그를 만나기 위해 날아간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줄리는 편지를 발견한 이래 쑨 이를 줄곧 걱정해왔으며, 그의 근황을 듣고는 자신이 그를 곤경에 빠뜨린 것이 아닐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 만나자마자 친해졌어요.”

“그는 저를 누나라고 불렀고 마치 원래 알던 사이인 것 같았죠.”

BBC=MARCUS FUN

둘은 선물을 교환했다. 쑨 이는 꽃을 가져왔고, 줄리는 오리건주에서 산 책을 가져왔다. 줄리는 또 쑨이가 쓴 편지와 편지를 발견한 할로윈 선물도 함께 가져왔다.

“쑨 이는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것에 매우 감사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해피 엔딩은 아니었다.

쑨이는 자카르타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가던 중 중국 요원으로 의심되는 이에게 연락을 받았고 두 달 후 그는 급성 신부전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내와 형제들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부검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레온 감독 역시 쑨이의 신장에 전혀 문제가 없었으며, 그가 자카르타에 있을 당시 건강해 보였다고 했다.

줄리는 그의 소식을 듣고 절망했다.

“그가 행복한 결말을 얻기를 원했어요.”

“쑨 이는 제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었어요. 그와 같은 일을 겪고도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전 세계에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에요.”

BBC=EL TORO STUDIOS

줄리는 쑨 이와의 만남 후 삶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제 그녀는 제품의 라벨을 꼼꼼히 살펴 원산지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고 자녀들에게도 이를 교육했다.

인권운동가들은 쑨이의 이야기를 아직 잊지 않고 있다. 국제 앰네스티는 아직도 중국 내 많은 수용소가 명칭을 감옥 혹은 재활원으로 고쳐 운영되고 있으며, 반정부 인사와 파룬궁 수련자들이 여전히 재판 없이 수용소에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2015년 보고서를 통해 파룬궁 수련자들을 향한 고문 행위가 “아직 만연하다”고 전했다.

이후 레온 리는 쑨이에 대한 내용을 담은 다큐 영화 ‘마싼자로부터 온 편지'(Letter from Masanjia)를 제작했고 이 영화는 지난 10월 26일 케임브리지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