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재벌이 낸 ‘폭력금지’ 신문광고에 담긴 ‘반전’ 메시지, 네티즌이 풀었다

By 남창희

홍콩 최고 갑부 리카싱(91)이 게재한 신문광고가 중국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리카싱은 홍콩신문 2곳에 각각 독특한 전면광고를 냈다. 그중에서도 ‘폭력반대’로 보이는 광고가 중화권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광고는 하얀 바탕 정중앙에 큼지막한 글씨로 ‘폭력’이라고 쓴 한자에 금지표시를 붙였다. 폭력시위에 반대하는 듯한 메시지로 읽힌다.

또 그 위에는 ‘최선의 의도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라고 적고 맨 아래에는 ‘사랑을 품고 분노를 멈추자’라고 전했다.

다시 왼편에는 ‘자유를 사랑하고 관용을 사랑하고 법치를 사랑한다’, 오른편에는 ‘중국을 사랑하고 홍콩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한다’로 썼다.

[좌] 리카싱이 게재한 신문광고 | [우] 신문광고를 분석한 이미지 | 트위터 캡처

광고 내용만 봐서는 홍콩 시민들에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폭력을 멈추자는 뜻을 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리카싱이 워낙 유명한 데다 그동안 홍콩의 재벌들이 시위에 침묵을 지키던 상황에서 나온 이번 광고는 중국에도 소개되며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이 광고를 분석한 중화권 네티즌 사이에서는 “숨겨진 뜻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위쪽과 좌우 문구의 끝 글자만 모으면 “책임은 국가에 있다. 홍콩의 자치를 허용하라(因果由國 容港治己)”라는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홍콩 시위대를 가볍게 책망하는 광고이지만 속뜻은 홍콩을 지지하고 중국정부에 반대하는 내용이다.

숨은 메시지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네티즌의 분석에 따르면, 폭력금지 광고의 상단 문구 첫줄은 4자, 둘째줄은 6자다. 하단 문구는 첫줄이 8글자, 둘째줄이 9글자다.

홍콩 재벌 리카싱 | EPA=연합뉴스

모두 합치면 89년 6월 4일, 즉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천안문) 학살이 벌어진 날짜가 만들어진다.

1989년 이날 중국 공산당은 앞서 며칠간 계속됐던 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탱크와 총기를 앞세워 유혈 진압했다.

현재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홍콩에서 10분 거리에 장갑차 수십 대를 주둔시켜 놓고 시위진압훈련을 하는 등 언제라도 군대를 투입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하고 있다.

천안문 사태 때와 유사한 상황에서, 리카싱의 광고에 등장한 6, 4, 8, 9의 숫자는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공교롭다.

리카싱의 광고가 알고 보니 홍콩을 지지하며 중국정권을 비판하는 해석이 제기되면서, 웨이보 등 온라인 공간에서는 해당 광고를 전하는 게시물이 전면 차단됐다.

홍콩서 10분 거리에 주둔한 중국 장갑차 | AFP=연합뉴스

한편, 지난 18일 홍콩 범민주 진영 시위는 170만명이 모인 가운데 경찰과 큰 마찰 없이 평화롭게 진행됐다. 폭력이 아닌 이성적 요구를 내세운 시민들의 결의가 드러났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