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구카이라이는 왜 ‘악마’로 변했을까?(한)

8월 9일 허페이 중급법원에서 헤이우드 살해사건의 주범으로 법정에 선 구카이라이(동영상 캡처)

[www.ntdtv.com 2012-08-13]

9일 허페이에서 국내외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구카이라이(보시라이의 부인)가 영국인 사업가 헤이우드를 살인한 죄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재판 직후 허페이 중급법원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구카이라이가 범행을 저지를 때 정상인보다 통제능력이 약했고 또 다른 범인을 검거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말했다.”

최종 판결이 나오진 않았지만 피고인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보도한 것은 사형집행유예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카이라이가 사형집행유예를 받건 유기징역을 판결을 받건 이미 사람이 아닌 ‘악마’로 변한 사실은 바꾸지 못한다. 마귀와 사람은 구별이 있다. 사람에게는 진실한 감정이 있고 인성(人性)이 있으며 도덕적인 최저선이 있지만 마귀는 감정이 없고 인성이 없으며 도덕적인 최저선이 없다.

그렇다면 최고 고등교육까지 받은 구카이라이가 어쩌다 살인을 즐기는 악마로 타락하게 되었을까? 셰익스피어의 작품 ‘맥베스’에 등장하는 맥베스 부인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맥베스 부인은 전형적인 이중인격자다. 남성중심의 도덕관으로 형성된 온유하고 예의바른 여성의 이미지를 지닌 동시에 남자들도 따르지 못하는 총명과 정치적 야심이 있었다. 마녀의 예언을 통해 맥베스가 왕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그녀는 남편의 야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군주 살해, 왕위 찬탈에 찬동한다. 그녀는 ‘권력은 바로 진리’이며 ‘용감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영웅’이었다.

의지가 굳세고 성격이 강했던 맥베스 부인은 남편이 국왕을 살해하려는 음모로 고민할 때 살인을 추진할 힘을 주었으며 자극적인 말로 남편의 국왕 시해를 부추겼다.

미친 듯이 권력욕에 사로잡힌 멕베스 부인은 온유함을 버리고 살육을 선택했다. 그러나 국왕의 사망 과정은 맥베스 부인이 사람에서 악마로 타락하는 과정이며 그녀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먹는 과정을 상징한다.

왕의 선혈을 대가로 권좌에 오른 맥베스는 더욱 많은 살육을 자행했고 결국 많은 사람들의 배반을 초래했다. 부인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마지막에 맥베스는 아내가 미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쨌든 그녀는 죽어야 했어. 조만간 이런 소식이 들릴 줄 알았어!”라고 냉담하게 말했다. 맥베스 부인의 비참한 결말은 그녀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순간 결정되었다.

맥베스 부인과 마찬가지로 권력욕이 강했던 구카이라이는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의 역적모의에 가담해 해외연락책을 맡았다. 베이징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던 구카이라이는 빼어난 미모와 뛰어난 능력으로 해외매체에서 중국의 ‘재클린’이란 칭호를 들을 정도였다. 보시라이는 일찍이 충칭의 ‘창홍타흑(唱紅打黑)’ 과정에서 아내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만약 올해 2월 중공고위층의 내막을 폭로한 왕리쥔 사건이 없었고 정변이 성공했더라면 구카이라이는 맥베스 부인처럼 최고 권좌에 앉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계산은 하늘의 계산만 못하다. 최근 소식에 따르면 헤이우드가 살해당한 이유는 경제적인 다툼이 아니라 구카이라이와 불화가 생긴 후 입막음을 위해 살해된 것이다. 이 명령을 내린 인물은 보시라이였다. 그렇다면 헤이우드는 대체 어떤 내막을 알고 있었기에 살인멸구(殺人滅口) 당했을까? 그는 구카이라이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을 선전하는 구카이라이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보시라이 부부가 참여한 파룬궁 수련자 생체장기적출 및 장기와 시체 매매에도 연루되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은 정치국의 다른 6명 상무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룬궁 탄압을 발동했다. 당시 중국의 많은 성(省)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당시 다롄시장으로 있던 보시라이는 달랐다. 그는 승진을 위해 장쩌민에게 최대한 잘 보이려 했다. 다롄에 장쩌민의 초대형 그림을 걸고 장쩌민 지시에 따라 파룬궁을 탄압했다.

보시라이의 심복이자 운전기사였던 왕(王)모씨의 증언에 따르면 장쩌민은 보시라이에게 “파룬궁을 강경하게 대해야만 승진 평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는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앞장서기 시작했다. 한마음으로 남편이 승진하길 원했던 구카이라이는 파룬궁 탄압에서 남보다 뛰어나야만 보시라이가 발탁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롄은 곧 파룬궁 탄압의 선봉이 됐다. 최신 감옥과 노교소 등을 대량으로 건설해 전국 각지에서 신원을 밝히지 않고 감금된 수많은 파룬궁 수련자들을 옮겨왔다.

구카이라이는 맥베스 부인과 달리 권력욕뿐만 아니라 금전욕도 아주 강했다. 구카이라이는 장쩌민의 다롄 시찰로 파룬궁 탄압 실적을 인정받자 경제적으로도 이익을 얻기 위해 장기 및 시체매매에 나서기 시작했다.

1999년 8월 중국 최초 시체 가공 공장이 다롄에 설립됐다. 이 기업은 보시라이가 직접 다롄 외국경제무역국과 공상국의 비준을 받아 설립한 것으로 자본금이 800만 달러, 투자금이 1500만 달러였다. 회사 주인 하겐스가 공장 설립지로 다롄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정부가 우수한 노동력과 저렴한 임금, 풍부한 시체자원을 제공하는 등 각종 편의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구카이라이와 헤이우드는 영국에 회사를 설립해 시체매매와 장기적출 매매에 직접 참여했다.

이렇게 많은 시체들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해외 인권단체 조사에 따르면 팔려나간 시체들은 파룬궁 수련자들로 의심되며 4만여 개에서 9만여 개의 장기에 대한 출처가 불명확하다. 구카이라이와 보시라이가 해외에 소유한 자산이 80억불에 달한다고 한다. 보시라이 구카이라이 부부가 파룬궁 수련자들을 죽이고 장기를 적출해 매매한 후 거액의 폭리를 취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런 극악무도한 사업을 시작하면서 구카이라이는 인간에서 악마로 변했다. 보시라이 역시 파룬궁 수련자들의 선혈을 짓밟고 랴오닝성 부서기, 대리성장, 성장을 거쳐 상무부장과 충칭시 서기에까지 오르게 됐다.

2010년 중앙기율조사위원회의 조사는 구카이라이를 민감하게 만들었고 왕리쥔의 배반은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를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구카이라이가 이번 재판에서 사형을 면한다 해도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먹은 그녀의 운명은 맥베스 부인의 결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세상의 심판뿐만 아니라 하늘의 심판이 도래할 것이다.

NTDTV Kore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