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새지도부는 홍위병 세대(한)


▲11월 15일, 시진핑 총서기와 중국 공산당 제5세대 지도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문화대혁명 속에서 성장한 홍위병 세대다.

[www.ntdtv.com 2012-11-17]

시진핑(習近平)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 제5세대 지도부는 문화대혁명시기 홍위병 세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7명의 상무위원들은 모두 1945~1955년생으로, 문화대혁명 시기에 10대와 20대를 보냈다.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을 휩쓸었던 홍위병 부대는 베이징의 고위간부 자녀들이 이끌었다. 현재 태자당이라 불리는 공산당 계파 중에 이들이 포함돼 있다. 홍위병들은 마오쩌둥 정권을 옹호하는 보황파(保皇派)와 마오쩌둥 정권을 반대하는 조반파(造反派)로 치열하게 대립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교육을 받은데 그친 홍위병 상당수는 모두 농촌으로 내려갔다. 시진핑과 리커창(李克强) 부총리, 왕치산(王岐山) 부총리, 장더장(張德江) 부총리 등은 모두 농촌으로 내려간 경험을 갖고 있다.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習仲勛)전 부총리가 반당분자로 몰리면서 중학교를 마친 직후 1969년 산시(陝西)성 옌촨(延川)현의 산골 마을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그는 15살 때부터 22살까지 옌촨현에서 보냈다. 시진핑은 18세 때 입당 신청서를 냈지만 아버지가 반당분자라는 이유로 입당을 10회 이상 거부당해 좌절하기도 했다.

마오쩌둥이 정권을 탈취한 즉시 지식인 개조에 나서면서 문화대혁명이 종식될 때까지 중국 도시의 젊은이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농촌에서 농사일에 종사했다. 농촌생활은 배움의 기회를 박탈하고 엘리트다운 면모를 사라지게 했다. 이들은 지식청년이라 불리지만 현재 중국에서 가장 지식이 없는 세대가 됐다.

중국 제5세대 지도자들은 고학력을 갖고 있지만 마오쩌둥 시대를 거치면서 정규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문화대혁명 때 운영된 공농병민대학은 출신만 부합하면 입학이 가능했다. 문화대혁명이 종식된 후 중국은 교육체계를 재정비하고 대학입시를 부활시켰다. 하지만 평가기준은 낮았고 고위간부 자제들은 인맥을 통해 쉽게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뒤늦게 학업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홍위병 세대의 잘못은 아니지만 지식 기본기를 갖추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전통문화 대신 공산당의 기형적이고 폭력적인 문화 속에서 성장해 바른 가치관을 갖추기 어려웠다. 홍위병 세대는 불행한 세대임은 의심할 바 없다.

자신들의 일생을 이렇게 말한다. “성장기에는 3년 자연재해를 만났고, 공부해야 할 시기에는 문화대혁명을 만났다. 대학 갈 때가 되니 농촌으로 쫓겨났고, 가정을 이루니 계획생육을 해야 했다. 중년이 되어 성공하려 하니 정리해고 바람이 불었다.”

문화대혁명은 향후 중국을 이끌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어떻게 작용했을까. 매체들은 문화대혁명이 마오쩌둥식 정치운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줬고 대중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반대로 문화대혁명을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을 통제하고 권력을 견고히 할 수 있는 공산당 정치운동의 알맹이를 터득했다. 홍위병 출신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 당서기는 최근 업그레이드 된 마오쩌둥식 정치운동을 통해 대중과 극좌파 세력의 지지를 얻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최고 지도부 진입을 노리고 있었다.

보시라이, 시진핑 등 홍위병 세대 당 간부들은 시대를 반성하고 대중의 고통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대신 개인의 권력과 이득만 보고 앞으로 달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 입으로는 공산당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고 하지만 자녀들은 모두 농촌이 아닌 서방 명문대로 유학 보냈으며 가족들은 권력을 이용해 거액 축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개혁개방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치를 들여다보면 문화대혁명은 현재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정치 환경은 홍위병들에게는 유리해도 중국 국민들에게는 재앙이다.

NTDTV Kore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