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闻] 6·4 사건 1만 일, 중국인민채권 인터넷 유전 外

【禁闻】六四一万日 「​中国人民债券」微信流转

 

6·4 사건 1만 일, 중국인민채권 인터넷 유전

 

10월 19일은 ‘6·4 톈안먼 학살’ 사건 발생 1만 일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현재 1위안 지폐를 본떠 만든 ‘중국인민채권’ 도안이 중국 웨이신 채팅방에서 전해지고 있는데요, 네티즌들은 이런 방법으로 사건을 우회적으로 기념하고, 피의 빚을 돌려받는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중국인민채권의 액면에는 1만 일이 표기돼 있습니다. 뒷면에는 1989년 학생운동 당시의 톈안먼 모습이 그려져 있고, 앞면에는 이미 사망한 중공 지도자 덩샤오핑(邓小平), 리펑(李鹏), 야오이린(姚依林)과 보이보(薄一波) 등의 두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6·4 당시 피의 빚을 진 사람들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채권의 일련번호는 TS8964-161019로 표기돼, 1989년 6월 4일부터 2016년 10월 19일까지 막 1만 일이 지났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홍콩 지련회, 홍콩연락사무소 앞에서 촛불집회 가져

 

한편 홍콩에서는 수십 년 동안 6·4 희생자 추모활동을 대대적으로 개최하고, 6·4 재평가를 요구해온 홍콩 지련회(支联会)가 홍콩 주재 중공 기관인 홍콩연락사무소 문 앞에서 6·4 사건 1만 일을 기념하는 촛불 추모시위를 벌였습니다.

 

자유 아시아 방송에 따르면 이 활동은 10월20일 저녁 6시 4분에 정식 시작됐습니다. 30여 명의 추모자가 손에 촛불을 들고 모이자 주최자는 톈안먼 어머니회가 수집한 희생자 202명의 이름과 추모사를 차례로 낭독했고, 이어 참가자 전체가 1분 동안 묵념을 했습니다.

 

연단에 오른 지련회 회장 허쥔런(何俊仁)은 비록 1만 일이 지나갔지만, 시간은 6·4라는 국가의 상처가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슬픔을 전혀 감소시키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정의와 6·4 재평가, 희생자의 존엄성 회복 쟁취, 그리고 중국을 위해 투쟁하겠다는 자신들의 결심을 약화시키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1만 일 전인 1989년 6월 4일, 중공은 군대와 탱크를 톈안먼 광장으로 진입시켜 광장에서 평화적으로 청원하던 시민과 학생들을 학살했습니다. 사건 발생 후 중공은 진상을 덮어 감추며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사건이 ‘반 혁명 폭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년 동안 ‘6·4 사건’은 중공이 가장 기피하고 가장 삼엄하게 봉쇄하는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광저우 노병 수백 명, 민정청 앞에서 구호 외치며 항의

 

10월 11일 중공 퇴역 노병 만여 명이 베이징에서 중공 군사위원회 81 빌딩을 포위하고 항의 시위를 벌인데 이어 16일 광저우(广州)에서도 수백 명의 퇴역 노병이 광저우 민정청(民政厅) 앞에 모여 구호를 외치고 군가를 제창하며 중공 정부에 불만을 표했습니다.

 

홍콩 애플 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중공 군사위원회 81 빌딩을 포위했던 노병들은 각지로 강제 송환됐고, 어떠한 요구도 해결되지 않은 채 불이익 처분만 받았습니다. 이에 불만을 가진 광저우 노병들이 민정부에 몰려가 재차 항의하며 성원을 표했습니다.

 

편집 저우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