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할머니의 보따리 안에는 ‘이불’과 아직 ‘온기가 남은 미역국’이 있었다

By 이미경

지난 2014년 9월 오후 1시경, 부산서부 아미파출소 김치환 경위는 한 통의 신고 전화를 받았다.

“어떤 할머니가 보따리 두 개를 들고 한 시간째 같은 거리를 왔다갔다 해요. 아무래도 할머니가 이상합니다.”

현장에 출동한 김 경위는 60대 중후반의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를 들고 서성이는 걸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피니 할머니는 울먹이시며 같은 말만 반복했다.

“딸을 만나러 가야 되는데…”

도와드리려고 딸 이름과 주소를 물었지만 할머니는 대답하지 못했다. 일이 간단치 않음을 직감한 김 경위는 할머니를 모시고 파출소로 돌아왔다.

부산경찰 SNS

단서가 될 만한 소지품이 있는지 확인했지만, 전혀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기억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라 파출소 직원들은 우선 할머니가 편안하게 안정을 취하도록 도왔다. 횡설수설 하는 할머니가 유일하게 반복한 말이 “딸이 아기를 낳고 병원에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든 보따리 내용물이 좀 특이했다.

이불, 온기가 남아있는 미역국과 밥 그리고 나물 반찬들…

할머니는 출산한 딸에게 따뜻한 미역국을 챙겨주려고 나섰다 길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파출소 직원들은 음료를 드리고 말을 걸면서 할머니가 최대한 기억을 되살리도록 애썼다. 또, 슬리퍼를 신은 것을 보고 인근 주민이라고 판단해 수소문하며 단서를 찾았다.

그렇게 신고 4시간 만에 딸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이후, 부산 관내 대형병원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느라 3~4시간이 또 걸렸다.

저녁 8시쯤, 할머니를 모시고 딸이 있는 병원을 찾았다. 할머니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갓난아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딸 앞에서 보따리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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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식어버린 미역국과 밥을 내밀며 할머니는 말했다.

“어여 무라(어서 먹어라).”

온전치 못한 정신에도 자신을 위해 미역국을 품에 안고 온 엄마를 본 딸은 펑펑 눈물을 쏟았다.

치매로 집 주소도 전화번호도 그리고 딸 이름도 다 잊었지만, 할머니가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었던 단 하나. 바로 ‘엄마’라는 이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부산 경찰은 이 사연을 ‘치매를 앓는 엄마가 놓지 않았던 기억 하나’라는 제목으로 SNS에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