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 6세기 간지·통일신라 관직·조선시대 현령 등 명문 30여개 나와 천연기념물 제155호 울진 성류굴에서 1천200여 년 전인 신라 원성왕 14년(798)에 화랑과 승려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씨가 발견됐다. 성류굴은 ... 4월 11, 2019
  • 40㎝ 길이 의례용 배 모형·’당주’명 묵서 목간도 출토 고환경 자료인 식물 63종 씨앗·멧돼지뼈·곰뼈 나와 신라 천년 왕성인 경주 월성(月城·사적 제16호) 해자에서 1천600년 전 무렵 만든 것으로 ... 4월 2, 2019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밝은 달을 노래한 문장은 셀 수 없이 많다. 흥미로운 것은 일부 시 중에 ‘달을 다듬는다(修月)’는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면, 북송의 대문호 소식(소동파)의 시 중에 “從來修月手, 合在廣寒宮(과거에 달을 다듬는 목수들은 월궁에 모여 있네)”라는 구절이 있다. 명나라 때의 당백호는 ‘관오산(觀鳌山) 2’에서 “金吾不禁夜三更,寶斧修成月倍明(금오에서 야밤 통행금지가 없으니 옥도끼로 다듬어 달이 더욱 밝구나)”라는 등이다. 그렇다면 달을 다듬었다는 것은 누군가 달을 만들어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대체 누가 달을 만들었을까? 당나라 때 당나라 단성식(段成式)이 지은 《유양잡조(酉陽雜俎)》 <천척(天呎)>편에는 두 사람이 달을 다듬는 신선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나라 문종 태화(太和 827~835년) 시기에 정인본의 사촌동생과 왕수재가 숭산(嵩山)에 유람을 갔다. 두 사람은 덩굴을 헤치며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한참을 헤매고 있는데, 갑자기 숲속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나는 곳으로 가서 보니 흰옷을 입은 사람이 보따리 하나를 베고 한창 단잠에 빠져 있었다. 두 사람이 다가가 “저희가 우연히 이곳에 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혹시 어디로 가야 큰길이 나오는지 아시는지요?”라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들어 그들을 한번 보고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다시 잠에 빠졌다. 두 사람이 재삼 깨우자 그제야 일어나더니 가까이 오라고 했다. 두 사람이 다가가니 그는 웃으면서 “그대들은 달이 일곱 가지 보석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아는가? 달은 모양은 둥근 공과 같고, 그림자는 해가 울퉁불퉁한 곳을 비추어 생긴 거라네. 늘 8만2천 가구가 달을 다듬고 있는데, 내가 바로 그 가운데 한 사람일세”라고 했다. 그러고는 보따리를 풀어 도끼와 끌 등의 도구를 보여줬다. 보따리 안에는 또 옥설반(玉屑飯)이 두 개 있었는데, 두 사람에게 주면서 “이 옥설반을 먹으면 비록 장생불로하지는 못할지라도 평생 병에 걸리지는 않을 걸세”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몸을 일으켜 길을 알려주고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여기서 옥설반이란 옥 가루로 만든 밥을 말한다. 고서에는 신선의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흰옷을 입은 사람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신선임에 틀림이 없고 달을 다듬어 아름답게 유지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수년 전 인터넷에 한 도인이 쓴 ‘전생에 달을 만든’ 이야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지금부터 1억 년도 더 전인 사전(史前) 시기에 전생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의 문명은 현대문명보다 훨씬 더 발달했는데, 현대인들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수많은 과학기술이 당시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 때 사람들은 천체를 하나 만들어 우주로 올려보내 어두운 지구의 밤을 밝힐 계획을 세우고는 먼저 달 내부에 각종 정밀기어·기계·동력장치 등을 설치했다. 이러한 장치와 골조 이외에는 달 내부는 빈 공간이다. 가장 바깥층은 달을 보호하기 위해 수km에 걸쳐 두터운 금속판을 설치했다. 당시 달의 정면은 태양빛을 반사해 지구의 밤을 밝히도록 디자인했다. 그리고 ... 3월 27, 2019
  • 건축문화재 원형(原形), 시기 특정과 정의 힘들어 “문화재 수리는 이상과 현실의 싸움…최선 방안 도입해야” 백제 무왕(재위 600∼641) 대인 639년 건립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 3월 25, 2019
  • 사람의 행위는 그 시대의 페러다임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중국 고전에 등장하는 한 아내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감탄하는 이유도 현대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순수한 헌신과 사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3월 15, 2019
  • 석가모니,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는 4대 성인으로 꼽힌다. 석가모니는 35세 때 깨달음을 얻은 후에 45년간 인도 전역에 설법하러 다녔다. 80세 되던 해 어느 날 석가모니는 ‘3개월 후에 ... 2월 12, 2019
  • 다섯 끼 식사…절에서 승려 만든 두부 먹는 모임 ‘연포회’ 인기 한국국학진흥원 ‘양반 식도락’ 소재 웹진 담 2월호 펴내 (안동=연합뉴스) 김효중 기자 = “조선 시대 양반은 하루 ... 2월 11, 2019
  • “명절마다 주는 세뱃돈이 부담스럽다”고 어르신들은 말한다. 5만 원권이 발행되면서 부담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신사임당(5만 원권)의 등장으로 세종대왕(1만 원권)이 머쓱해진 상황이다. 심지어 세뱃돈에 대한 부담으로 ‘세배 타임’을 피해 아침 일찍 집을 나가 저녁에 들어오는 어르신들도 있다. 하지만 받는 손자들도 문제다. 돈을 받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세배를 하거나 심지어 금액이 적다고 궁시렁댄다. 세배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세배(歲拜)란 ‘지난 세월에 감사한다’는 뜻을 가진 명절 고유의 풍속으로, 새해 첫날 어르신이 무사히 한 해를 넘기고 새해를 맞은 것을 기념해 문안드리고 그간 보살펴 주심을 감사드리는 것이다. 부모, 친족뿐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께도 세배 인사를 드렸다. 조선 시대에 유래된 풍습으로 알려진 세뱃돈은 세배 인사를 올린다고 찾아왔는데 빈손으로 보내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조금씩 쥐여준 것이 기원이 됐다고 한다. 봉투 겉면에 책값, 붓값 등 돈의 용도를 적어 건넸으며, 풍요보다는 근신을 당부하는 덕담이나 글을 전하기도 했다. 세뱃돈의 유래에 대해서는 미혼 자녀에게 붉은색 봉투에 돈을 넣어 풍족해지라는 의미의 중국 풍습이 전해졌다는 설과 일제강점기에 일본 세뱃돈 문화가 한국에 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다. 국내에 세뱃돈 문화가 생긴 것은 100년이 되지 않은 일이다. 세배에 대한 답례로 돈을 줬다는 기록은 서예가 최영연의 시집 ‘해동죽지(海東竹枝, 1925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새해 인사를 드리기 전에 목욕을 깨끗이 하고 설빔을 입은 뒤 어르신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2019년 설부터는 세배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어르신들께 새해 인사를 드리는 건 어떨까. 2월 3, 2019
  • ‘천하본무사(天下本無事) 용인자요(庸人自擾)’라는 말은, 원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용속한 사람은 없는 걱정도 사서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신당서(新唐書) 육상선전(陸象先傳)>에서 내원한 고사성어. 당나라 예종(睿宗) 때의 일이다. 조정에 육상선(陸象先)이란 ... 11월 16, 2018
  • 현대의학이나 심리학자들은 자세와 건강의 관련성을 연구하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면 몸에 활력이 생기고 심리적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중국 전통의학(중의학)과 전통사상에서는 자세·걸음걸이가 건강은 ... 11월 5, 2018
  • 중국 옛 명인들 중에는 신기하게도 꿈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이 같은 꿈을 통해 평생 깨닫지 못했던 학문의 이치나 원리를 깨닫게 됐다고 증언했다. 원나라 시기 ... 10월 1, 2018
  • 어느 날 소크라테스에게 한 제자가 황급히 달려와 흥분하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도저히 상상도 하실 수 없는 일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잠깐만!” 소크라테스는 그를 즉시 제지시키며, “네가 나에게 알려주려고 ... 9월 27, 2018
  • 옛날 중국에 한 거만한 장군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계급이 높다고 매우 오만했으며 인근 백성들을 종종 괴롭히기도 했다. 그 장군이 머무는 인근 마을에는 흰 수염을 기른 노인과 ... 9월 17, 2018
  • 옛 동양인들은 재산, 명예, 지위 등은 모두 전생에서 쌓은 덕(德)에 따라 정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자신의 재물을 지키려고 해도 덕이 없으면 결국 잃게 된다는 뜻이다. * ... 9월 8, 2018
  • 감사 편지는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행복지수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은 매주 3회, 연속 3주간 감사 편지를 썼을 때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이 올라가며 우울증 ... 8월 28, 2018
  • 장정옥(張廷玉)은 청나라 옹정 황제 시절 대학사(大學士)를 지낸 고위 관리였다. 몸은 비록 고위직에 있었지만 겸양의 도리를 잘 알았다. 그는 자식들에게 늘 소박하고 덕을 중시할 것을 요구했으며 자신의 ... 8월 24, 2018
  • 지난 1960년대 외할아버지 집이 산둥성 자오둥(膠東) 농촌에 있었을 때 일이다. 당시 집안은 매우 가난해 외할아버지는 세 아이를 데리고 힘들게 살고 계셨다. 당시 어머니는 집에서 둘째였는데 이 ... 8월 18, 2018
  • 청나라 때, 산서(山西) 지방에 한 곡(谷)씨 성을 가진 관리가 있었다. 그의 관직이 감찰을 책임진 감사(監司)였기에 사람들은 그를 곡감사라고 불렀는데 그는 세 차례 환생한 경험을 기억하고 있는 ... 8월 15, 2018
  • 한글, 한자 등 동양 문자는 원래 띄어쓰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말까지 글쓰기에는 띄어쓰기가 없었고 오른쪽 위부터 아래로 쓰는 세로쓰기 방식이었다. 그럼 띄어쓰기는 언제 처음 나왔을까? 최초의 ... 8월 14, 2018
  • 중국에는 “사랑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응석을 받아 주면 그 사람을 해치게 된다”는 옛 말이 있다. 자녀를 몹시 사랑하는 부모에게는 가슴 아픈 이야기다. 청나라 소설집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는 이런 이야기가 ... 7월 31,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