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게장 라이벌, ‘밥도둑 스팸’의 탄생과 비하인드 스토리

By 정경환

식탁에선 최고의 반찬, 스마트폰 상에서는 지긋지긋한 광고메일/문자를 의미하는 스팸.

이렇게 상반되는 두가지 의미를 가진  ‘스팸(SPAM)’의 탄생과 역사 속 에피소드에 대해 알아본다.

 

  1. 1927년 미국 돼지고기 가공 공장에서 탄생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호멜(Hormel)사의 차기 회장 제이 호멜은 단순 육가공 포장 판매를 하던 공장을 좀 더 혁신적인 기업으로 일군다.
유튜브_세상의모든 지식

제이 호멜은 아버지의 회사에 처음 입사해 2년간 작업복을 입고 각 부서에서 일하면서 피부로 회사 경영을 터득했다. 그가 부사장에 직위 하던 때에 독일로 여행을 다니던 중 우연히 통조림에 담은 햄을 접하게 되었다.  깊은 인상을 받은 제이 호멜은 이 기술을 미국으로 들여와 ‘호멜 햄’을 출시하게 되었다.

유튜브_세상의모든 지식

출시 초기에는 마케팅의 부재로 부진한 판매 실적을 보였으나 당시 미국 전역에 100달러 상금을 건 햄 이름 공모전에서 ‘Spiced Ham(양념 햄)’의 약자인 ‘SPAM’이 최종 결정되면서 스팸의 존재를 널리 퍼지게 됐다.

 

  1. 전쟁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초기 영국에 엄청난 양의 무기와 군수품을 원조했다. 그중 전투 식량으로 스팸이 포함되었다.

유튜브_세상의모든 지식

전쟁 중에 영국 전역에는 배급제를 실시할 정도로 식량난에 허덕였고, 스팸은 긴 유통기한과 쉬운 조리법으로 영국 국민들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 당시 영국은 ‘스팸 랜드’라고 불릴 정도로 스팸이 주식처럼 활용되었다.

그리고 2차 대전에 미국이 참전국으로 투입되면서 스팸은 미군의 주요 전투 식량으로 활용됐으며 전쟁 기간 중 출하된 스팸의 양이 무려 1억 3300만 개에 달했다.

이렇게 많은 양의 스팸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고 유독 우리나라의 쌀밥과 궁합 잘 맞아 현재까지도 고급 햄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1. 스팸은 과잉 공급의 대명사였다.
유튜브_세상의모든 지식

2차 세계 대전 당시 육군 총사령관이었던 아이젠 하워는 호멜 컴퍼니 75주년 맞이 감사편지에 “나는 수백만의 병사들과 스팸을 함께 했다”는 감사 멘트와 함께 “단지 한가지 실수가 있다면 지나치게 스팸을 많이 보냈다”는 유머 멘트를 덧붙였다.

편지 내용만 봐도 그 당시에 이미 스팸은 과도함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튜브_세상의모든 지식

전쟁통에 삼시 세끼 스팸만 먹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미군과 영국 군인들의 불만이 속출했고 영국 BBC 코미디 풍자 프로그램은 이를 콩트를 통해 비꼬았다.

이후 과도한 광고 인쇄물과 우편들을 ‘스팸’이라고 칭했고 오늘날까지도 ‘스팸문자’, ‘스팸메일’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자세한 스토리 영상보기>